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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 성지 ④ 에필로그 - 못다한 남은 이야기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1-22 09:37:25 조회수 : 52

일찍이 기해년 겨울에 천진암에서 강학이 있을 때

주어사는 설중(雪中)인데도 이벽이 한밤중에 도착하자

각자가 촛불을 밝혀 들고 경서를 담론하였다.

그 후 1785년 이 강학을 비방하는 소리가 일어나서,

다시는 그러한 강학을 더 이상 개최할 수 없었다

(1857년 다블뤼 주교의 기록).


김대건 신부의 사목기간은 불과 몇 개월에 불과했지만 한국 가톨릭의 첫 사제로서의 은혜를 주시고 영광스럽게 된 것처럼, 광암 이벽 또한 짧은 생애에 초기 한국 가톨릭에 끼친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광암 이벽에게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조물의 주인이시라는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의 세례명이 ‘요한 세례자’였던 것은, 하느님을 알리라는 광암 이벽의 사명이었음을 믿습니다.


숲길 순례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그의 초상은 그 짧은 생애만큼이나 뜨겁고 강렬하여, 들고 있는 등불이 순례자의 영을 마치 환한 빛으로 가득 채워주는 듯합니다.

성지 전담 신부님으로부터 천진암 성지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포천 화현리에 광암 이벽을 기념하는 성지가 조성되어, 기념 경당과 전시관이 갖추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는 광암 이벽에 대해서 글을 남긴 박제가, 정약용 등의 사료들이 전시되어, 광암 이벽의 생애를 좀더 살펴보기에 좋은 곳이기도 합니다. 


천진암 성지가 성지로 개발되기 시작된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강학회의 성격을 천주교 모임으로 변화시킨 광암 이벽의 젊은 열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이 때문에 천진암 성지가 주는 기존의 이미지보다는 훨씬 더 젊은 성지처럼 다가왔습니다. 


2027 WYD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김대건 신부와 더불어 10대부터 20대가 주도했던 한국천주교회의 시작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자생적 신앙과 진리를 향한 탐구심으로 인한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한국으로 향하는 전 세계의 청년들에게 신앙의 큰 모범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