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첨삭·보완하였던 파리외방전교회 피숑 신부의 메모에는 이승훈 가문의 전승을 통해 내려오던 이승훈 베드로의 마지막 유언이 적혀있습니다. 1801년 음력 2월 26일, 형장으로 끌려가는 우마차 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확의 때가 왔다. 잘 깨어있어야 할 때이다.”
주변에 있던 이교인들이 그 뜻을 물었지만, 이승훈은 침묵하였고 끝내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1784년 초, 성탄의 별빛을 따라간 동방의 박사들이 가난한 마구간에 다다랐던 것처럼, 동지사를 따라 먼 길을 떠난 이승훈은 북경의 북당에 들어섭니다. 원죄와 본죄를 씻는 세례의 은총은 그라몽 신부가 그의 머리 위에 부어준 물을 통해 그의 영혼 위에 부어졌고, 하느님 자녀로서의 새로운 삶이 그의 앞에 펼쳐졌습니다. ‘조선 교회의 반석’, ‘첫 번째 제자’라는 뜻이 담긴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고 돌아온 그를 통해, 이 땅에는 수많은 지식인을 비롯하여 평민과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승훈은 시대의 징표를 천주교 신앙 안에서 찾으려는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관직에 있으면서도 교회의 가르침을 지키려는 의지를 가졌습니다. 또한 주문모 신부의 입국 전까지, 평신도로서 초기 신앙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가성직 제도의 사제)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뿌리내리기도 전에, 열한 살의 어린 왕인 순조를 대신해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곧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는 ‘수확의 때’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시기였습니다. 창립 선조들의 진리와 구원에 대한 목마름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학(邪學) 무리의 간교한 계획이라는 오해로 뒤바뀌어 받아들여졌습니다. 조선 최초로 세례를 받고 천주학에 관련된 서적을 밀반입한 이승훈에게도 박해의 칼날이 향하였습니다.
‘사교의 우두머리’라는 죄명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이승훈은, 세례성사의 첫 자리로 다시 돌아갑니다. 다시 태어나는 성사의 은총은 본디 주님의 죽음으로 내가 사는 은총이었습니다. 죽어야 다시 사는 길, 수확의 때를 위해 땅에 떨어지는 밀알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세례성사의 은총이었습니다. “수확의 때가 왔다. 잘 깨어있어야 할 때이다.”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박해의 칼날 앞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 준비하려 한 그의 마지막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승훈 베드로가 남긴 신앙의 밀알은 4대에 걸쳐 7명의 순교자를 배출한 ‘천주 신앙 가문’이라는 열매로 이어졌습니다. 깨어 죽은 한 알의 밀알은 한국 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위한 거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성사의 은총은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티켓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길을 걸어가는 결단이자 도움입니다. 하느님의 종 이승훈 베드로께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해 처음부터 받은 은총의 의미를 가르쳐달라고 청합시다.
하느님의 종 이승훈 베드로
죽어야 다시 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저희 마음에 새겨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