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수원주보 기사

가해 연중 제6주일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2-12 12:07:14 조회수 : 43

김대건 신부님은 1844년 12월 10일 만주 소팔가자에서 최양업 신부님과 함께 부제품을 받고 이듬해 1월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의 명을 받아 조선에 잠입합니다. 

한양에 도착한 김대건 부제는 그동안의 온갖 고생으로 병에 걸려 누웠으나 곧 회복하여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페레올 주교의 밀명으로 중국을 오갈 배를 마련하려 동분서주합니다.


김대건 부제는 도착 직후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으나 어머니 고 우르술라는 골배마실에 생존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린 동생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전라도 땅으로 피신하여 어머니 혼자 신자들에게 동냥을 얻는 비참한 처지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대건 부제의 심정은 얼마나 찢어졌을까요.

  

그런데 김대건 부제는 어머니를 끝내 만나지 않고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이틀이면 올 수 있는 거리였는데 매정하게 왜 만나러 오지 않았을까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곰곰이 편지와 자료를 읽으며 묵상해보니 결국 김대건 신부님의 심정이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십 년의 세월 천신만고 끝에 부제품을 받고 교구장의 중요한 밀명을 받고 조선에 몰래 잠입했습니다. 고향 땅에는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만약 쉽게 행동하다 정체가 드러난다면 이는 개인의 위험뿐만이 아니라 박해받는 조선교회를 위해 섭리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 전체를 어긋나게 하는 위험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육정으로는 비참한 어머니를 찾아보고 위로하는 것이 간절하였겠지만 더 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슬픔을 안고 떠나셨던 것일 겁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주님 앞에 간결하고 분명하게 ‘예.’ 할 것은 ‘예.’ 하시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응답하여 복음의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