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이 성지 앞쪽으로는 ‘기도의 숲’이 있습니다. 그 숲의 정상은 ‘갈미봉’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입니다. 갈미봉을 넘어가면 깊은 계곡 안에 김대건 신부님의 가족이 피난와서 정주하셨던 집터가 있습니다. 이곳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골배마실 성지’입니다. 은이 성지에서 기도의 숲을 지나 봉우리를 넘어간다면 금세 도착할 만큼의 지척에 있지만, 사유지에 막혀있어 차로 10km 정도를 돌아가야만 골배마실 성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은이 공소를 오가기 위해 매일 갈미봉과 숲길을 오가던 청년 김대건의 발자국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순례자도 기도의 숲을 지나 골배마실까지 단번에 갈 수 있는 순례길이 있다면, 얼마나 큰 은혜가 될까하는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옛적 은이 공소 사람들은 사제를 본 적이 없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미사나 성사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하느님을 믿으며 험난한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곳에 오신 모방 신부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하느님의 영이 청년 김대건에게 머무르는 것을 직관하시고 세 번째 신학생으로 김대건을 택하셨습니다. 이 사실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가슴 뛰는 소식을 가지고 이 기도의 숲길을 지나 청년 김대건의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기도의 숲, 오솔길을 따라 난 십자가의 길에서 순례자는 김대건 신부님이 사목하시고 순교하신 그 마지막 순간까지를 묵상하며 걸어보았습니다. 1846년 4월 12일, 신부님이 은이 공소를 떠나시기 전날은 주님 부활 대축일이었으며, 이날 신부님은 어머니와 신자들과 함께 은이 공소에서의 마지막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공식적으로 집전한 순교 전 마지막 미사였습니다. 이 미사에서 신부님은 어머니와 신자들에게 말씀을 남기십니다. 이 말씀이 순례자에게도 부족했던 신앙을 성찰하게 하였으며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신부님의 삶이 신앙의 거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험난한 때에 우리는 천주님의 인자하심을 믿어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할 용맹을 주시기를 간절하게 구합시다.
… 내일의 삶을 모르는 위급한 처지에 처해있는 우리들입니다. 내 마음과 몸을 온전히 천주님의 안배하심에 맡기고 주님과 성모님께 간구하시기를 잊지 맙시다. 다행히 우리가 살아있게 된다면 또다시 반가이 만날 날이 있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천국에서 즐거운 재회를 합시다. 홀로 남으신 내 불쌍한 어머님을 여러 교우분들이 잘 돌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