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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가장 가까운 곳 하느님의 종 심원경 스테파노 (1817?~1866)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2-19 16:40:25 조회수 : 32

“신부님, 저희는 ‘성세권’에 살아요!!” 어느 신자분이 밝은 표정으로 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가 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성당에서 얼마나 가깝게 사는지를 나타내는 단어로, ‘성’(성당)과 ‘세권’(생활권)을 합친 말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가깝게 지내고자 하는 마음은 신자라면 모두 마찬가지겠지요. 문득, ‘성세권 중의 성세권’에 사는 저에게도 그런 기쁨이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어쩌면 참된 ‘성세권’은 거리보다 마음의 방향에 달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병인치명사적』에 따르면,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심원경 스테파노는 인천 함박리의 토박이였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와 공원이 들어선 그의 고향은 당시 인천현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마을이었습니다.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은 마을의 위치는 천주교 신앙이 자리 잡기 좋은 여건이 되었고, 따라서 이곳에는 박해 이전부터 이미 신앙이 전해져 있었습니다. 심원경은 고향에서 어린 시절 가족들로부터 신앙을 배웠고, 그 가르침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따랐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심원경은 나이가 들어 아들 심봉학과 함께 양지 사기막골로 떠났다고 합니다. 고향에는 천주교 신자들뿐 아니라 외교인들도 많았고, 더 깊은 신앙생활을 하기에는 마땅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기막골’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옹기를 굽는 마을이었던 그의 새 보금자리는 신자들이 비교적 안전하게 생계를 꾸려 나가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교우촌이었습니다.


1866년,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베르뇌 주교가 체포되고 도리 헨리코 신부 등 선교사제들이 붙잡히면서 병인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전국적인 박해의 소용돌이는 양지 사기막골에도 미쳤고, 심원경은 새로운 신앙의 거처를 고민한 끝에 고향인 함박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더 깊은 신앙의 자리를 찾아 떠났던 심원경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의 끝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그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함박리에서 체포된 그는 수원으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겪은 뒤, 1866년 11월(음력) 아들 심봉학과 함께 수원 남문(팔달문) 밖 장터에서 몽둥이에 맞아 순교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무덤가의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주님을 만난 곳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본래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이었습니다. 심원경 스테파노는 ‘멀리’ 가서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을 선택한 그 자리에서 주님과 가장 가까이 만났습니다. 오늘 우리도 삶의 터전에서 주님께 더 가까워지는 선택을 한다면, 바로 그곳이 우리가 찾는 ‘주님과 가장 가까운 곳’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종 심원경 스테파노

제 삶의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곳임을 깨닫게 하시고

제가 있는 곳을 주님께서 머무르시는 곳처럼 

가꾸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