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고통스런 사형의 공포가 목전에 닥친 사람 중 자신이 살 방도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이를 마다할 이가 몇이나 있을까요.
처음에는 순교 직전 김대건 신부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해도 잘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사제로서의 삶이 너무 짧았기에 더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진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도 계속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의 옥중서한과 조정에서 기록한 옥중심문기록 등을 계속 살펴보고 곰곰이 묵상하면서, ‘방법이 있다면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조금의 미련도 김대건 신부님에게 남아있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오히려 영웅적인 순교만이 아닌 깊은 신앙과 복음전교,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의 안전, 치밀한 사목적 지혜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체포 직후 다섯 번째 공초까지 신부님은 자신이 중국인 우대건이고 조선에 유람하러 왔다며 자신을 감춥니다. 이는 정체를 속여서 페레올 주교님, 다블뤼 신부님과 연루된 신자들의 안전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하였을 뿐입니다. 때가 되자 자신이 김대건 신부임을 당당하게 밝히십니다.
좌우포청 3차 심문 열한 번째 공초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그저 선교사들을 계속 죽인다고 서양세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세계정세 즉 국제정치상황을 직시해야 함을 중화사대주의와 우매함 속에 머무르고 있는 위정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조선에선 유일무이한 서구언어 능력을 보이신 것도, 세계지도를 완성하신 것도, 자신의 일신 안위를 위함이 아닌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의정 권돈인 등이 강하게 비판했지만, 김대건 신부님이 마음만 달리 먹으셨다면, 살아날 방법은 충분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온갖 유혹과 고통, 공포를 물리치시고 신부님은 옥중에서 동료 사제들에게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십니다.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미구에 천당에서 영원하신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 잘 있게.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나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께서 만일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여, 누가 감히 당할 수 있으리까.
무익하고 부당한 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묶인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김 안드레아 올림.”
(열아홉 번째 서한, 1846년 7월 30일, 감옥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