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 주님의 ‘변모 사건’ 안에는 ‘양가감정’(Ambivalence)이 등장합니다. 바로 ‘아름다움’과 ‘두려움’입니다. 타볼산 위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을 때, 제자들은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동시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힌 나머지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왜 나를 두려워하느냐’라는 꾸짖음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 있는 우리, 즉 인간을 먼저 이해하고 안아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신앙선조들 역시 두려움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박해 시대를 살았던 그들 또한 한 인간이기 때문에 고문과 죽음 앞에서 흔들렸고, 가족을 떠나야 하는 고통, 더 나아가 배교까지 강요받았던 그 고통 속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 미리내는 박해를 피해 산골짜기로 숨어든신앙인들이공동체를 이루어호롱불을 켜고 사는 모습과 밤하늘의 별빛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 마치 ‘은하수’와 같다고 해서 지어진 옛 지명입니다. 미리내로 숨어들던 그 발걸음에는 용기와 함께 두려움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 곁에서 사제로서, 이웃으로서, 또는 형제로서 함께 했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역시 그 두려움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 공동체에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두려워하지 말라.’며 호통치지 않으셨고, 오히려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마음으로 죽음의 순간까지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께서 옥중에 남긴 편지 말씀입니다.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돌보아 주십시오!’
이 말씀은 순교를 앞둔 한 사제의 유언이면서도 두려움 속에 남겨질 신앙 공동체를 향한 위로였습니다. 두려운 마음이겠지만 사랑을 잃지 말고,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곁에 남아 있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겪는 두려움은 다릅니다. 칼과 형틀 대신 감정과 상처를 두려워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을 신앙의 부족으로 오해하여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박해 모습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다시 들려오는 말씀입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네 두려움과 함께 나아가도 된다.’
이 위로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한 걸음씩 신앙의 길을 걸어갑시다.그리고 우리 모두가 순교자들의 용기를 닮아가게 해 달라고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