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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지 ③ 이민식 빈첸시오와 무명 순교자 묘역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3-12 13:42:28 조회수 : 52

이민식 빈첸시오는 김대건 신부님이 사목하셨던 은이 공소에서 신부님을 돕던 신자였습니다. 당시 김대건 신부님은 26세, 이민식은 17세였습니다. 이민식은 소년 시절부터 겸손하고 모든 일에 열성이었던 분이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 소식을 듣고 순교현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수일을 지키고 있다가 관원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시신을 겨우 수습하였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잘린 목은 준비해 간 보자기에 싸 가슴에 안고, 육신은 거적에 싸서 등에 지고 새남터에서 미리내까지 200리 길을 교우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슬픔과 고통의 길이 되었을 여정을 생각해보면, 그 아픔이 고스란히 순례자에게도 느껴지는 듯하였습니다. 지금은 도보 순례길이 되어 당시를 묵상하며 순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왼쪽으로 김대건 신부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의 묘소가 있으며, 그 옆자리에 바로 이민식 묘가 자리하고 있어 순례자들에게 그분의 숭고한 신앙을 묵상하게 합니다.  


성 요셉 성당의 위쪽에는 무명 순교자 묘역이 있습니다. 이 무명 순교자 묘역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순명하며 살다가 자신의 이름조차 숨긴채 순교하신 분들의 묘역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이름도 알 수 없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순교자들의 유해를, 1976년 수원교구 순교자 현양사업 때 이곳에 함께 모셨다고 합니다. 특히 처음에 있던 17기 중 한 기가 103위 성인 중 마지막 한 분인 이윤일 요한 성인임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윤일 성인은 상주 여우목이라는 곳에서 교우촌을 이루고 살다가 관아에 잡혀 대구 관덕정에서 순교한 분입니다. 현재 이윤일 성인의 유해는 성인이 순교한 대구로 이장되어, 미리내 성지에는 이날의 감회를 적은 ‘천묘사적비’만 남아있습니다.


이처럼 미리내 성지는 박해시대의 교우촌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안치되면서 순교성지로써 초기 한국 가톨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함께 간직한 소중하고 거룩한 공간입니다. 박해를 피해 산골오지에 모여 함께 생활하며 기도하였던 신앙공동체 ‘미리내’.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보호하고 의지한 그분들의 숭고한 신앙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우리 또한 그분들의 신앙에 빚진 자 되어 사랑과 복음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