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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것들 하느님의 종 홍창룡(?~1866)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3-12 13:43:03 조회수 : 50

주님의 얼굴을 그려 봅니다. 지난 시간 수도 없이 그분의 얼굴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았지만, 김 서린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떠오를 뿐입니다. 복음서는 수많은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년 예수님은 성전에서 학자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을까. 카나의 혼인 잔치 식탁에서 주님은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죄 많은 여인 앞에서 주님은 땅 위에 무엇을 쓰고 계셨을까. 끊이지 않는 질문과 함께, 사실 복음서의 모든 장면은 ‘기록된 것’만큼이나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복음서의 공백은 수없이 아름다운 묵상의 원천이면서도, 끝내 풀리지 않는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그분과 얼굴을 마주 보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며, 그분과 한 식탁에서 먹고 마셨던 제자들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3년 동안 그분 곁에 있었던 제자들은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조차도 주님을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주님의 얼굴이 희미해질수록, 그들이 붙들었던 것은 눈앞의 장면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 그리고 주님의 약속 안에서 거행되는 신비였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서의 공백을 ‘설명’으로 채우기보다 삶과 증언으로 채워 갔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대신해, 그들의 삶이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복음서는 ‘기록’이 아니라 ‘증언’으로 채워져 갑니다.


1866년 병인박해 무렵, 충청도 직산에서 윤평심과 함께 교리교사로 활동하였던 하느님의 종 홍창룡은 언제 태어났고, 어디에서 왔는지 전해지는 바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중요한 증언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이웃 사람들에게 교리와 기도를 가르치고, 교우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신자들과 선교사들에게 자기 집을 내주는 등 열심히 주님을 섬겼다고 전해집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듯, 홍창룡은 체포되기 전 약 3년 동안 봉현규를 비롯한 이웃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애덕을 실천하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체포 뒤에도 용감히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결국 홍창룡은 윤평심과 함께 관가에 체포되어, 1866년 12월 이전 수원 진영에서 신앙을 고백한 뒤 순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종’들의 삶의 모든 과정을 우리가 다 알 수는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그들의 ‘신앙의 행적’에 대한 뜨거운 증언들이 놓여 있습니다. 순교자의 삶 안에서 말해지지 않은 것들, 그 공백은 비어 있지 않습니다. 순교자의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고백이었고, 이름 없는 봉사는 설명보다 분명한 증언이었습니다. 복음의 공백이 성경의 말씀과 교회의 전승으로 채워지고, 사도들과 증거자들의 삶으로 채워지듯이, 오늘 우리 일상의 공백도 주님을 향한 증언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하느님의 종 홍창룡

저희가 말보다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게 하시고,

일상의 공백을

기도와 사랑으로 채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