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근 성지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목이 잘리고 시신이 거리에 내버려지거나 효수된 순교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성지입니다. 한국 천주교 최초의 박해인 1791년 신해박해 이후 일어난 1801년 신유박해는 신자들을 향한 대대적인 체포와 구금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 신유박해의 중심에는 양근 성지에서 기억하고 있는 초기 가톨릭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권철신, 권일신, 정약종, 유항검 등이 이곳 양근에서 체포되어 절두산과 서소문 등지에서 공개 처형되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박해 속에서도 양근 지역의 신자들은 오히려 공동체를 유지하며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양근 성지는 단순히 신앙적인 장소를 넘어 순교역사의 시작과 동시에 공동체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권철신을 비롯하여 여러 지도자의 가르침을 통해 신앙과 교리가 하위층 계급인 천민에게까지 넓고 깊숙하게 전파되었으며,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천주를 믿어 그들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천주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고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신데 어떻게 그분을 배반하라고 그러십니까? 이 세상에서도 누구든지 부모를 배반하는 사람은 용서를 못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사람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은 더구나 배반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 신앙고백은 동정 순교 부부인 조숙 베드로의 부인 권천례 데레사가 옥중에서 남긴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이 부부는 혼인 후에도 정결을 지키며 하느님께 자신들을 온전히 봉헌했습니다. 이들은 극한의 고문과 형벌을 받으면서도 순교를 택한 신앙의 증인들이기도 합니다. 양근 성지에는 부부의 상을 조각하여 그분들의 삶과 신앙을 기리고 있습니다.
양근 성지 경내에 세워진 여러 순교자상은 초기 신앙 선조들이 흘린 진한 피와 숭고한 순교신앙 앞에서 과연 우리의 삶에는 어떤 신앙이 필요한지 깨우쳐주고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이 순교하는 삶을 통해 배우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것은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었던 것처럼 순교자들 또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사랑을 실천하였던 것으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