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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언어가 침묵하는 순간 하느님의 종 고시수 야고보 (1817~1866)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4-09 10:06:02 조회수 : 71

실의에 빠진 누군가의 곁에서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순간이 있습니다. 입안에서 맴도는 몇 마디 위로가 먼지처럼 가볍게 느껴져, 차라리 침묵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끝없는 절망에 빠진 욥을 찾아온 세 친구처럼, 위로를 건넨다면서도 결국 하느님의 징벌을 운운하며 자신조차 해명해 내지 못할 고통의 이유를 캐묻는 우를 범할까 두렵습니다. 공감이 결여된 어설픈 위로의 말이 상처를 더 깊게 만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상대의 고통에 다가가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해 줄 수 있을까요.


상대가 겪는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고, 그 슬픔을 나누어 짊어질 수도 없는 무력감이 마음을 먹먹하게 짓누를 때면 함민복 시인의 「선천성 그리움」이 떠오릅니다. 시인은 우리가 서로를 품에 안아도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다고 말합니다. 상대의 심장은 내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나의 심장은 내 왼쪽 가슴에서 뛰기에 우리는 끝내 하나로 겹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에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의 마지막을 수놓는 새 떼와 번개의 은유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어 보이는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기적 같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한줄기 빛을 보여줍니다. 나의 위로가 닿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이슬비 같은 하늘의 위로가 상처받은 영혼 위에 내리기 시작합니다.


충청도 내포 출신인 하느님의 종 고시수 야고보는 교우촌이었던 천안군 목천면 소학골(현 성거산 성지)에서 살았습니다. 병인박해 때 아들 고의진 요셉이 관헌에게 붙잡혀 공주에서 순교하자, 그는 겨우 열아홉 살이던 어린 며느리 문 막달레나를 데리고 산속으로 피신합니다. 만삭이던 며느리는 산중 피신처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포졸들이 들이닥쳐 갓난아이와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시아버지였던 고시수 야고보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며느리 곁을 지킵니다. 고시수 야고보는 며느리와 함께 죽산도호부로 끌려가 옥에 갇힙니다. 한 달 뒤 문 막달레나가 순교하기까지, 그는 옥중에서 며느리를 끊임없이 격려하고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신앙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를 모두 잃은 고시수 야고보는 결국 수원 유수부로 끌려가 교수형으로 순교합니다.


고시수 야고보는 영원한 위로의 원천이신 하느님 안에서 희망을 발견했고, 자신보다 더 고통받는 며느리를 위해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는 위로를 구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망과 고문의 고통,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순교자들은 타인을 위한 위로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상처로 우리의 상처를 낫게 하시는 주님의 참된 위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해지듯이, 그들은 인간이 줄 수 없는 위로를 받아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기쁨에 넘친 얼굴로, 흥겨운 목소리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고통의 신비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안에서만 비로소 밝혀집니다. 그 신비와 가장 가까운 순교자들의 전구는 인간의 위로를 아득히 넘어서는, 성령께서 베풀어 주시는 위로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통로입니다. 인간의 위로가 끝나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위로가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종 고시수 야고보,

저희가 건네는 위로의 한마디가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위로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