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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수 요셉 신부(양근 성지 전담)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4-09 10:06:30 조회수 : 73

우리는 흔히 이야기합니다. “사는 게 죄지요”, “어디 죄 안 짓고 생활하는 사람 보았습니까?” 이는 인간은 연약하고, 유혹에 약하여 자주 죄를 범하거나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와 잘못으로 인해 심한 죄책감과 죄의식을 느끼며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주눅 들고, 움츠러든 삶을 사는 일입니다. 이는 그야말로 생지옥 중에 생지옥일 것입니다. 죄와 잘못 때문에 움츠러든 삶이 어떤 모습인지 오늘 복음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에 처해졌을 때 도망을 갔다는 죄책감과 중죄인인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들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의 모습이 그 옛날 저의 모습이며, 죄의식 때문에 힘들어하는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를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때까지도 두려움과 죄의식 때문에 예수님의 평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용서받았다는 마음의 평화를 갖지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너희에게 평화를!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를 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면서, 주눅 들고 죄의식에 싸여 있던 마음이 비로소 풀리게 됩니다. 


죄를 지은 우리가 고해성사를 보아도 마음속에 남겨진 깊은 죄의식으로 힘들어하는 것은 ‘내적인 평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고, 예수님을 죽은 자들 안에서 살리시어 우리에게 산 희망을 주셨습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하고 도망을 친 제자들까지도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큽니까? 우리가 이런 하느님의 자비를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체험하게 되면 더는 죄의식으로 힘들어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폐쇄되고 움츠러든 우리 내면에 평화를 주기 위해서 부활하셨고, 성령을 보내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체험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을 꼼짝 못 하게 했던 모든 죄의식이 사라지게 되고 죄로 인해 받은 우리의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과거가 깨끗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가 변모되는 것입니다. 더는 아프지 않고, 그 상처 때문에 앞으로의 삶을 매일매일 죽이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처의 변모가 곧 ‘용서’ 입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다섯 상처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그들을 용서해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 때, 자신의 잘못으로 상처 입은 경우라면 하느님께, 타인의 잘못으로 상처 입었다면 상대방을 찾아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나 자신과 우리의 이웃을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