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록의 여인은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여인 앞에는 크고 붉은 용이 세상에 나올 아이를 언제라도 삼켜 버리기 위해 노려보고 서 있습니다. 태초에 바닥을 기어다니던 유혹자는 마지막 때에 이르러 세상의 권세와 세력을 얻고,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 달린 용이 되어 있습니다. 그 꼬리만으로도 하늘의 별들을 쓸어 버리는 압도적인 강력함 앞에서 여인은 무력하게 웅크린 채 태 안에 있는 생명을 감싸안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된 세상의 악에 대한 승리와 구원의 이야기는 성경의 마지막 장까지 관통하고 있습니다. 요한사도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환시는 죄악의 역사가 극에 달한 때에, 구세주 탄생의 희망이 한 여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용이 세상의 악에 대한 묵시문학적 상징이라면, 여인은 미약해 보이지만 이미 시작된 구원에 대한 상징입니다. 여인은 비록 나약해 보이지만 태양을 입고 달을 밟고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쓰고 있습니다. 성모님을 암시하는 여인의 모습에 대한 묵시록의 묘사는, 이 여인이 신적 존엄을 지닌 존재임을 드러냅니다.
병인박해 때 죽산에서 순교한 문 막달레나는 열여덟 살에 천안의 교우촌에 살던 고의진 요셉과 혼인합니다.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공주에서 순교하자, 그는 임신한 몸으로 시아버지 고시수 야고보와 함께 산속으로 피신합니다. 고달픈 산중 피난 생활 속에서 그는 해산의 고통을 감내하고 마침내 아이를 낳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생명을 품에 안는 기쁨도 잠시, 죽산 포교가 들이닥쳐 문 막달레나는 시아버지와 함께 붙잡혀 죽산도호부로 끌려갑니다. 문 막달레나의 딱한 사정을 들은 한 독지가가 아이를 키워 주겠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어린 자식과의 정을 끊어야 하는 괴로움을 가슴에 새긴 채, 문 막달레나는 끝내 죽산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합니다.
지난 3월 11일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국회 소위회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임신중절’ 대신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해 윤리적 죄책감을 줄이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보호자 동의 없는 미성년자의 낙태, 방법과 기간의 제한이 없는 낙태의 가능성까지 열어 두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법안이 우리 사회의 생명 가치관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문 막달레나가 박해 중에 보여 준 모습은, 어린 생명을 수호하는 데 맞닥뜨리는 어떤 장애물과 제약에도 맞설 수 있었던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영역이 아닙니다. 여성과 남성을 떠나 인간에게는 인간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습니다. 말 못 하는 태아가 지닌 생명의 권리를 선언하고 지켜 주는 것, 그것이 여성이 지닌 첫 번째 권리이자 자유입니다. 그 권리를 지킬 때 비로소 여성의 존엄이 드러납니다. 묵시록의 여인은 악에 맞서는 성모님이자, 박해를 눈앞에 둔 순교자의 교회이며,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을 수호할 의지를 꺾지 않는 모든 어머니입니다.
하느님의 종 문 막달레나
모든 어머니를 지켜 주시고,
저희가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보호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