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당리 성지는 고즈넉합니다. 오후 서너 시만 되어도 인적이 드뭅니다. 저는 이 고요함이 참 좋습니다. 바람과 나무들이 만나는 소리가 들리고, 더 집중하면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기도하기 참 좋습니다.
오래전부터(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추정) 서울, 경기, 충청도에서 이주해 온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내고자 ‘느지지’ 마을(현 요당리)로 피난하여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의 자유만큼 소중한 가치는 없었습니다. 조선시대 천주교인들은 실패하고 많은 것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하느님을 향유했으니 모든 것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요당리 교우촌에서 신자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시련을 이겨 나갔습니다. 선교사로부터 성사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이웃에게 전교하며 신앙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요당리 성지는 ‘기쁨과 회복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특히 십자가 처형 장면을 목격한 제자들은 고문과 학대를 당한 것처럼 버려졌습니다. 그들은 스승을 배반한 죄책감과 무력감에 치가 떨리는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외부의 박해세력과 내부의 박해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용기를 잃은 그들은 문을 닫아걸며 숨어버립니다. 그리고 흩어집니다. 엠마오로 향한 두 제자에게서 박해로부터 피난 가는 교우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목격한 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인생의 방향을 잃고 무기력과 공허감 속에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득했을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 곁으로 누군가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루카 24,15).
십자가 위에서 처형당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분이 먼저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함께 걸으십니다. 호흡을 같이하고 편안한 눈길을 보내면서 보조를 맞추십니다.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야기를 들려주시지요. 성경이야기.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고, 생명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자주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추억과 기억 속에 새겨 놓은 말씀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부르며 붙잡을 때, 함께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빵을 나누어 주시지요. 그 순간 어떤 기억이 내 몸을 일으켜 세우듯 뜨겁게 만듭니다. 제자들이 그날을, 그 밤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내 발을 씻겨 주셨고 내게 생명의 빵을 주신 그 밤의 추억들, 사랑의 조각들이 맞추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루카 24,30). 제자 두 명은 그제서야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내 마음은 고요하고 인적이 드뭅니다. 어찌 보면 외로운 것 같고 세상에 나 혼자뿐인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울과 슬픔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사랑이신 그리스도님, 사랑이신 그리스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