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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장자 하느님의 종 박의서 사바(1808~1867)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4-23 11:44:06 조회수 : 46

보좌신부 시절, 한밤중에 사제관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성당 문을 열자 어린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한 부부가 서 있었습니다. 막막한 형편을 견디다 못해 성당 문을 두드린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신학생 시절 오스트리아에서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거리에서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이들이 ‘아이를 이용하는 어른들’이라는 생각에 못마땅했고, 사제관으로 찾아와 사정을 호소하며 신부들을 속이는 사람들도 있으니 “도움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 신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속는다 해도 난 도와 줄 거야. 이 각박한 세상에서 신부만큼은 속아 줄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신부는 ‘속아 주는데’ 전문가잖아.” 그날 밤 사제관 앞의 부부는 제 생활비의 일부가 아니라, 누군가를 먼저 믿어 주려는 마음을 받아 갔으리라 믿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큰아들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아버지를 멀찍이 바라봅니다. 집을 나갔던 동생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얘야,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라는 말에도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큰아들이 화가 난 이유는 단지 동생이 돌아왔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자기가 지켜 온 삶의 셈법이 무너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성실함과 의로움, 상과 벌로 세상을 정리하려 했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는 은총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니느베의 회개가 실망이었던 요나처럼, 잃었던 양을 찾은 기쁨을 모르는 이에게는 절벽으로 떨어진 돼지 떼가 더 아까운 법입니다. 은총을 ‘선물’로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기쁨의 자리에서도 멀찍이 서 있게 됩니다.


하느님의 종 박의서 사바가 살았던 수원 걸매리(현 충남 아산시 인주면)는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서 있던 마을 입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근처 언덕에는 오늘날 공세리 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걸매리 교우촌의 전교회장이었던 사바는 모범적인 신앙으로 공동체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동생 박원서 마르코는 노름에 빠져 집안의 근심이었다고 전해집니다.

1866년 병인박해로 아들 박흥갑과 이웃 교우들이 체포되자, 사바는 가족을 데리고 예산 여사울(현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로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포교가 다시 들이닥쳐 가족을 붙잡습니다. 순교를 망설이던 순간, 뜻밖에도 먼저 길을 택한 이는 동생 마르코였습니다. ‘애물단지’로만 여겼던 동생이 한 걸음 먼저 순교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사바는 마음이 열려 이렇게 말합니다. “동생, 들어보소. 우리 삼 형제 한마음으로 올라가 주님을 위하여 순교하세.” 박의서 사바와 두 동생은 1867년 3월, 한날한시에 수원 진영에서 순교합니다.


돌아온 이는 둘째 아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생의 회개 앞에서 마음이 열리고, 마침내 주님의 길로 함께 나아간 큰형 역시 ‘돌아온 장자’였습니다. 타인의 회개를 바라기 전에, 자비를 배우는 내 마음의 회개가 먼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바라시는 것은 누군가가 달라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먼저 받았기에 타인의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까지도 품어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먼저 신앙에 들어선 이가 배워야 할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종 박의서 사바

저희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을 닮게 하시고,

회개의 선물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