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 사람 생각난다. 그 사람,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행복을 그이가 누리길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2-3).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음미해 보면, 그분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우리를 초대하시며, 내 자리를 마련해 두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지순례할 때, 밥 먹을 때, 누군가 내 자리를 맡아놓고 옆에 앉으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예수님이 직접 하늘나라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니, 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까? 게다가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를 같이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같이 있게 될 것이다.’ ‘같이 있을 수도 있다.’라는 표현이 아닌 ‘같이 있게 하겠다.’라는 굳은 약속과 의지를 표명하십니다. 그리고 천상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가톨릭 신학과 철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교회학자입니다. 그는 대표 작품인 ‘신학대전’에서 밝혔듯이,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발출(Exitus)되어 하느님께로 귀환(Reditus)하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참된 행복의 출발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찾고 되돌아가는 나그네 여정을 현세에서 거닐고 있습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지니며, 그 여정에서 사랑과 진리, 아름다움과 선을 추구합니다. 신앙인과 무신론자, 이성주의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생명의 가치들입니다. 그런데 완벽하고 충만한 사랑과 진리, 아름다움과 선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따라가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창조주 하느님께로 귀환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이며 진리요 생명입니다.
우리 선조 순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누구보다 더 훌륭하게 증거하셨습니다. 병인 순교자 시복재판록(1900년 1월 10일)에 따르면, 손진도 바오로는 “장주기 회장은 … 회장으로 있을 때 학당에 있어서 열심수계(熱心守誡)하며 미사 참례 할 때 도무지 궐(闕)하지 아니하고 겸손인애(謙遜仁愛)하고 회장 직분을 아주 힘써 채우며 도리강론(道理講論)하며 신문교우(新聞敎友)를 가르치옵더이다.”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장주기 요셉 성인은 진리를 아셨고, 생명의 길을 따라가셨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며 하느님께로 귀환하셨습니다. “치명하여 예수의 구속하신 은혜를 보답하기가 항상 소원이라.”
예수님, 장주기 요셉 성인의 자리 곁으로 우리 자리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