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가을 성지 정원에 수선화 구근 100개, 적작약 뿌리 100개를 심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수선화는 봄날 3월 28일에 피었고, 부활절에 만개했습니다. 꽃을 보려면 겨울을 건너가야 합니다. 요당리 성지는 순교자들을 많이 배출한 성지이니, 수선화는 그분들의 품위나 고결함에 어울리는 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저는 고요한 시간이 편안하고 나무와 꽃이 좋아졌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귀찮게 하지도, 거짓말하거나 속이지도 않습니다. 막말하거나 비난하며 상처를 주지도 않습니다.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가 충족되면 꽃피우며 모두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합니다.
요당리 성지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을 보면 주변 성당을 비롯해서, 송도, 동탄, 광교, 분당, 천안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오십니다. 그분들은 유가가 오른 요즘에도 이 먼 곳까지 직접 운전하여 성지에 옵니다. 전례봉사, 일일피정 준비, 행사 정리, 그리고 성경통독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걸어 다니는 수선화 같습니다. 고귀하고 품위 있으니까요. 누군가 “부활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봉사자들의 손과 웃는 얼굴”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인품도 훌륭하고 신심도 은은하며 외모도 예쁘고 멋집니다. 모두 장주기 요셉 성인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폴 데통베 신부님의 기록에 따르면, 교우들은 장주기 요셉 성인에게 “저런 분은 또다시 없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성품이 얼마나 인자하면 그랬을까요. 달레 신부님이 쓰신 한국천주교회사에 실린 장주기 성인의 일대기 한 대목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장주기 요셉의 점잖은 외모에 감동하여 그를 죽음에서 구하고 싶어진 그 관장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직접, 또 부하 아전들을 통하여 장주기 요셉의 언명에서 단 한 마디를 바꾸게 하려고 해보았으나 헛일이었으니, 장주기 요셉은 자기의 언명을 고수하였다.”
심문하던 관장이 ‘사학쟁이 죄인’을 살리려 했다고 합니다. 관장은 장주기 회장의 인품을 보고 배교하도록 지속해서 요청하였으나, 장주기 성인은 받아들이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배우고 몸에 익힌 것은 대군대부의 성교이니, 형장 아래 만 번 죽더라도 만 번 하느님을 배척할 까닭이 있겠습니까?”(장주기 성인, 포도청 심문에서)
요당리 성지에 수선화가 핀 이유입니다. 4월 중순부터는색색의 연산홍과 철쭉이 성지 정원을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이 꽃들이 피는 이유도 같습니다.
사랑은 현재뿐 아니라 그 사람의 미래의 삶에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장주기 요셉 성인은 참으로 많은 후손과 후배 신자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계십니다. 사랑은 내가 떠나더라도 남아 있는 그 누군가의 삶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좋은 인연은 떨어져 있어도 서로에게 여운을 남기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세상살이 속에서 용기를 갖고 행복하고 지혜롭게 나아가길 바라며 협조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품위 있고 아름다운 교우 여러분, 성령의 바람을 타고 요당리 성지로 사람꽃 구경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