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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밭으로 하느님의 종 김양범 빈첸시오(1804~1867)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5-14 15:02:33 조회수 : 58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을 향해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며 끊임없이 이동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지켜주었고, 시나이산 이후에는 계약의 궤가 그들과 함께 늘 움직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은 한곳에 머무는 분이 아니라, 길 위에서 함께 걸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 농경문화가 지배하는 가나안에 정착하자 신앙의 정체성이 흔들릴 위험이 찾아옵니다. 하느님을 더 이상 ‘함께 움직이시는 분’으로 믿지 못하게 될 위험이었습니다. 통일 왕국의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야훼 하느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짓겠다는 말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마련한 집에 갇히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역사를 당신의 집으로 세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전을 먼저 요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다윗의 ‘집’, 곧 그의 왕조를 당신이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역설적으로 이스라엘은 성전 파괴와 바빌론 유배라는 비극을 겪으며, 비로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더 깊이 배우게 됩니다.


하느님의 종 김양범 빈첸시오도 어린 시절, 길 위에서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는 열 살 무렵까지 아버지 복자 김강이 시몬을 따라 여러 고을을 다녔다고 전해집니다. 중인 가문 출신이었지만 신앙 때문에 등짐장수가 된 아버지는 물건 사이에 성물과 기도서를 숨겨 다니며,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버지는 1815년 원주에서 순교합니다. 고단한 떠돌이 생활과 어린 나이에 겪은 부친의 순교는 김양범 빈첸시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여읜 후 떠돌이 삶을 정리한 김양범 빈첸시오는 교우촌이었던 충청도 홍주 거더리(현 당진시 합덕읍 신리 근처)에 정착해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떠돌며 신앙을 전했고, 아들은 머무르며 신앙을 실천합니다. 그는 근면과 성실로 재산을 모았고, 그 재산을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1859년 경신박해 때 수천 금의 재산이 압수되고, 남은 전답마저 지인에게 빼앗기는 일을 겪습니다. 모든 것을 부당하게 잃은 뒤에도 그는 집착이나 원망에 머물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1867년, 아들 김선행 필립보가 수원 포교에게 붙잡혀 순교합니다. 며느리를 만나러 가던 길에 체포된 김양범 빈첸시오 역시 같은 해 수원 진영에서 순교합니다. 한 집안의 신앙은 ‘길 위의 증언’에서 ‘정착의 실천’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3대에 걸친 순교로 완성되었습니다.


삶의 환경이 바뀌면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익숙한 방식이 무너지고, 의지하던 것들이 사라질 때 신앙도 흔들리는 듯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배운 하느님은 떠남과 정착의 모든 자리에서 함께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김양범 빈첸시오가 어린 시절 걸었던 길 위에서도, 땀을 흘린 밭에서도, 피를 흘린 순교의 자리에서도 하느님은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하느님을 붙들 때, 신앙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더 단단해집니다.


하느님의 종 김양범 빈첸시오

저희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어디서든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어

끝까지 신앙을 지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