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수원주보 기사

죽산 성지 ② 이름없는 이들의 숭고한 침묵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5-19 09:27:11 조회수 : 31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이다”

 (시편 126편)


죽산 성지 성역문에 들어서면 야외 제대 뒤쪽으로 ‘무명 순교자 묘역’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의 무명 순교자묘는 이름도 성도 남기지 못하고 처형당한 수많은 신자를 합장한 묘입니다. 무명 순교자묘를 중앙으로 좌우에는 12기씩 총 24개의 묘가 배치되어있는데, 그것은 죽산 성지에서 순교한 24명의 성인과 복자의 묘입니다. 좌우로 활짝 펼쳐진 날개처럼 무명 순교자들을 감싸안은 듯한 형상을 띱니다. 

묘역 양끝 제일 바깥쪽에는 대나무 모양의 현양탑이 한 개씩 하늘을 향해 솟아있습니다. 죽산 지역에 많은 대나무 형상으로, 순교한 이들의 곧은 절개 같은 신앙을 상징하는 탑입니다. 


그 옛날 관아에서는 ‘아무개’ 혹은 ‘이름 모를 죄인’으로 불렸을 그들이지만, 성지에서는 가장 귀한 존재로 추앙받습니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순교자들은 세상에서는 죽음을 끝으로 잊혀질 것을 알았지만, 오히려 그들은 체념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벅찬 희망을 갖고 침묵으로써 가장 강렬한 신앙의 고백을 남겼습니다.


둥근 봉분 앞에는 “눈물로 씨뿌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리이다.”라는 시편 말씀이, 봉분 아래를 두른 검은 석조 띠에는 ‘무명 순교자’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누구인지 모를 그들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신앙을 택한 이들의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름들이 때론 나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순례자 곁으로 오신 예수님과 성모님이 되어 묵상하는 순례자의 곁에 머뭅니다. 


고난 속에 신앙의 씨를 뿌리고 마침내 기쁨의 곡식을 거둔 순교자들의 발자취는 순례자들이 가야 할 이정표가 되어 그들의 삶에 나의 삶을 새겨보는 신앙의 길을 묵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