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는 17세기 초 일본 에도 막부 시대에 천주교 신자들에게 행해졌던 형벌 가운데 하나인 ‘수책(水磔)’이 등장합니다. 사람을 바닷가의 말뚝이나 기둥에 묶어 두고, 밀물과 파도 속에서 며칠에 걸쳐 서서히 죽게 하는 처형 방식입니다. 소설 속 인물 모키치는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나가사키 시내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뒤, 토모기 해안으로 끌려가 십자가처럼 엮은 기둥에 묶입니다. 밤이 되면 밀물이 차오르고 바닷물이 턱 밑까지 올라오는 가운데, 그는 “파라이소”, 곧 천국으로 가자는 노래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소설의 배경이 된 일본 나가사키현 소토메의 언덕 위에는 오늘날 ‘침묵의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어 간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그곳에는, 하느님의 거대한 섭리 앞에 선 인간 존재의 가난함을 드러내는 엔도의 짧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는 푸르기만 합니다.”
하느님의 종 박태진 마티아가 살았던 충청도 홍주 원머리 교우촌(현 당진시 신평면 한정리)도 바닷가에 위치한 척박한 마을이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 행담대교를 건너자마자 닿게 되는 이곳은, 오늘날에는 간척사업으로 너른 평야가 펼쳐진 비옥한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조수 간만의 차로 물길이 열렸다 닫히는, 세상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의 광풍이 내포 지방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이듬해 이웃 마을 걸매리의 박의서 사바 삼 형제가 수원으로 끌려가 순교했을 때도, 원머리는 한동안 무사했습니다. 밀물과 썰물이라는 자연의 순환, 하루에 두 번 열렸다 닫히는 바닷길은 박 마티아에게 천주께서 날마다 보여 주시는 ‘홍해의 기적’이었고, 박해로부터 그를 감싸주는 천사의 날개와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1868년 4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자 대원군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전국을 샅샅이 수색하던 관헌들의 발길은 마침내 원머리에도 이르렀고, 박태진 마티아는 사촌동생 박선진 마르코와 함께 체포되어 수원으로 끌려갑니다. 수원 관아에서 박 마티아는 관장의 심문을 받고 한때 배교하였으나, 사촌 박선진 마르코의 충고에 마음을 돌려 배교를 취소하고 다시 천주교 신앙을 증언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보름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교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훗날 박선진 마르코의 매제가 되는 서덕행이 두 사람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수원으로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때, 두 사람의 시신은 살아 있는 것처럼 깨끗하였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를 감싸 주었던 하느님의 보호는, 죽음에 이른 그의 육신 위에도 머물러 있었던 듯합니다.
우리 눈에 바다는 밀려갔다 돌아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더 큰 질서 안에서 바다는 제자리를 잃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밀려나고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는 박해의 시간조차 구원의 때가 될 수 있습니다. 절망과 두려움의 바다 앞에서도 찬미의 노래를 불렀던 순교자들의 믿음을 기억하며, 우리도 인생의 굴곡 안에서 더 큰 하느님의 뜻을 신뢰할 수 있기를 청합시다.
하느님의 종 박태진 마티아,
저희를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시고,
흔들릴 때마다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