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마침표는 소성당에서의 성체조배입니다. 무명 순교자 묘역에서의 기도와 장미 꽃향기 속에서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을 마쳤다면 이제 성지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소경당으로 갑니다. 소경당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철마다 다른 빛깔의 꽃들이 정원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꽃잎 사이를 가로지르며 평화롭게 지저귀는 새소리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외침 대신 하늘에서 내려오는 찬미를 대신하는 듯합니다.
이곳 소경당의 감실은 조금 특별합니다. 성체를 보관하는 일반적인 감실과 달리, 성체를 현시하여 언제든 주님의 얼굴을 마주 보며 기도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있습니다. 차가운 옥굴과 형장에서 떨며 기도했을 순교자들의 마음으로 성체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고요하고 성스러운 침묵 속에서 순례자는 비로소 죽산 성지의 진정한 의미를 만납니다. 150여년 전, 이곳을 지배했던 것은 죽음의 공포였지만, 오늘 이곳을 채우고 있는 것은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평화입니다. 성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이 땅이 더는 죽음의 땅이 아님을 믿습니다.
성당을 나서는 길, 무명 순교자들이 선물해 준 이 눈부신 평화가 제 삶의 자리에서도 계속되기를, 그리고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이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빛을 발견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성지 순례 후 10분 정도 이동하면 죽산면사무소 인근에 ‘옥사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잡혀 와 문초와 고문을 당했던 옥사입니다. 지금은 옥사터을 알리는 표석과 함께 죄인을 압송하거나 문초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비석과 함께 고난을 겪은 후 예수님을 만나는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고통과 수난을 겪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어준 예수님, 그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누리는 이 일상의 평화가 있음을 이 조각상을 통하여 한 번 더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