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2년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이즈 파스칼이 선종했을 때, 그의 하인은 그의 외투 안감 한쪽이 유독 두툼한 것을 발견합니다. 가슴 안쪽을 의도적으로 꿰맨 부분을 뜯어 보니 양피지 조각이 나왔고, 이렇게 『메모리얼』로 알려진 대략 1200자 분량의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1654년 11월 23일 밤 열 시 반부터 열두 시 반까지, 파스칼이 체험한 하느님 현존의 기록은 단 하나의 단어로 시작합니다.
“불” —“FEU”
제자들의 닫힌 마음을 열고 복음 선포의 열정을 타오르게 했던 성령의 불, 다니엘서의 세 청년을 집어삼켰지만 도리어 그들의 머리카락까지 보호해 주었던 불, 떨기나무를 휘감은 채 모세에게 하느님의 이름을 드러내었던 그 불. 파스칼은 그 불의 기억을 평생 가슴에 간직한 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이 다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게, 그 불에 대한 기억을 옷깃 안에 숨긴 채 살아갑니다.
‘숨겨진 마을’이라는 뜻을 지닌 은이(隱里, 현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는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만든 교우촌이었습니다. 은이 교우촌의 회장이었던 하느님의 종 서여심의 출신과 성장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1868년 순교하기까지 은이에서 보낸 스무 해 남짓한 시간은 교우들의 증언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는 1849년에 다블뤼 주교를, 1863년에는 리델 신부를 자신의 집에 모시고 신자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전해집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고 절망하던 교우들의 마음을 추슬렀고,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의 선종을 지켜 드린 이도 서여심 회장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긴 시간 동안 박해에 처한 공동체를 이끄는 동안 그는 여러 차례 체포의 위기에 직면했고, 그때마다 교우들의 도움으로 몸을 숨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박해가 잦아들면 다시 은이로 돌아와 지치지 않고 신자들을 격려하며 교우촌을 재건하였던 그는, 결국 1868년 동생 서여행과 아들 서대원 부자를 포함한 여섯 명의 신자와 함께 체포됩니다. 수원 진영으로 끌려간 서여심은 그해 5월 천주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의 화관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종 서여심, 그의 이름 여심(汝心)은 ‘너의 마음’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 안의 ‘너’는 결국 주님이었을 것입니다. 떨기나무 불 속에서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신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종의 이름 안에서도 당신의 불타는 성심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종 서여심은 그 이름 안에 주님의 뜨거운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순교할 때까지 아무도 모르게, 예수 성심의 불을 자신의 이름 안에 간직한 채 살아갔을 것입니다. 예수 성심 성월의 시작에, 하느님의 종 서여심의 전구를 통해 우리의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마음에 예수 성심의 뜨거운 불꽃이 새겨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종 서여심
저희 마음을 주님의 마음과 같게 하시고,
예수 성심의 뜨거운 사랑을
저희 마음에 새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