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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가족의 기도 하느님의 종 유 베드로(1845~1869)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6-11 16:41:50 조회수 : 47

어린 시절, 아버지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밤늦게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이 익숙했던 우리 집 ‘부엉이 가족’은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잠을 자던 좁은 방에 이불을 깔고 나면, 어머니는 예수 성심상과 성모상 앞에 놓인 초에 불을 붙이셨습니다. 부모님 곁에 앉아 바치기 시작한 저녁기도는 저녁기도문에 그치지 않고, 교황님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해 사제와 수도자, 부모를 위한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아직 낳지도 않은 ‘자녀를 위한 기도’를 함께 바쳐야 했고, 멀쩡히 살아 계시는 부모님 곁에서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를 바치던 매일 밤의 기도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습니다. 


저녁기도 시간은 어린 저에게 지루하기 그지없었지만, 기도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조금씩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문은 어려웠지만, 그 기도가 좁은 방을 넘어 하늘과 세상을 향해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뜻도 모른 채 입만 움직이며 따라 외우던 기도문들은 언제부턴가 알 수 없는 뜨거움과 함께, 주님을 위해 온 삶을 바치고 싶다는 마음을 제 안에 심어 놓았습니다. 과묵한 아버지와 소녀 같은 어머니가 오늘 밤에도 어김없이 바치실 그 기도는, 부족한 사제가 물려받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기도하는 습관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습니다. 154조목의 성교요리문답과 더불어, 오늘날의 기도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길었던 조과(아침기도)와 만과(저녁기도)를 눈을 감고 줄줄 외울 줄 아는 것은 세례를 받기 위한 기본 소양이었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신자도 많았고, 박해 시대에 따로 기도서를 지닌 것 자체가 큰 위험이었을 터이니, 기도를 ‘몸에 새겨’ 기억하는 일이 곧 신앙을 지키는 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종 유 베드로는 충청도 제천 번자리(현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리를 몸에 배도록 익혔으며,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평창으로 이주했다고 전해집니다. 외교인 마을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던 가운데, 평소 친분이 있던 김석여의 밀고로 유 베드로는 포졸들의 검문을 받게 됩니다. 가지고 있던 기도문과 성물들이 발각된 자리에서 그는 조·만과와 교리문답, 일비선종경(날마다 선종을 준비하는 기도)을 암송하며 용감하게 신앙을 드러냅니다. 죽산 관가로 끌려갈 때도 그는 묵주를 목에 걸고 십자고상을 앞에 모신 채 기도문을 외우며 걸었고, 주막에서는 외교인들과 포졸들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을 전했다고 합니다. 1869년 음력 8월, 그가 순교할 무렵에는 그의 집 근처에 신비로운 빛이 감돌아, 이웃들이 그의 순교를 알아차리고 놀랐다는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가톨릭 기도서의 아침·저녁기도는 오늘날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그 의미와 아름다움은 여전합니다. “사는 게 기도하는 것”이라는 말을 방패 삼아, 정작 기도를 게을리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종 유 베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도는 ‘멍에’가 아니라 우리 신자들의 ‘생명줄’입니다. 오늘 하루의 끝에서, 하느님의 종과 함께 바치는 저녁기도가 여러분의 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하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종 유 베드로

저희 가정에 기도의 불을 지펴 주시고,

이 믿음을 다음 세대에 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