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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뽁 강가에서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1819~1869)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7-09 15:28:59 조회수 : 31

야곱은 하느님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뒤 줄곧 피해 왔던 형 에사우를 만나기 전, 그는 야뽁 강가에 홀로 남아 밤을 지새우며 하느님과 씨름합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지낸 지난 20년의 처가살이 동안, 그는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어 내며 살아왔습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라헬을 얻었고, 열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수많은 가축을 거느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느님을 붙들고 축복을 청합니다. 모든 것을 건너보낸 뒤 홀로 남은 야뽁 강가의 밤, 야곱은 벌거벗은 영혼의 목마름을 마주합니다.


밤새 이어진 씨름 끝에 하느님께서 그의 이름을 묻자, 그는 “저는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형의 뒤꿈치를 붙잡은 자’, ‘속이는 자’라는 뜻을 지닌 그의 이름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드러내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더 이상 ‘야곱’이 아닌 ‘이스라엘’로 불러 주십니다. 이제 그는 자기 힘으로 움켜쥐며 얻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 매달린 사람이 됩니다. 동이 트는 새벽, 세속의 가치가 아닌 하느님께 사로잡힌 야곱은 강 건너에서 기다리는 형 에사우를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갑니다.


유서 깊은 교우촌이었던 수원 양간 용수말 출신의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는 스무 살 무렵, 평택 현덕면 인광리에 살던 열심한 교우이자 대부호의 무남독녀 김 바르바라와 혼인하게 됩니다. 그는 데릴사위로 처가살이를 하며, 타고난 부지런함과 뛰어난 수완으로 처가의 재산을 몇 배로 늘렸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후하게 베풀어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넉넉한 재산은 탐욕스러운 포교와 관리들의 수탈 대상이 되었고, 그는 1866년 평택 포교에게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됩니다.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는 이내 배교하였지만, 그 뒤로 깊은 번민 속에서 자주 통회의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1869년 어느 날, 마당에서 멍석을 만들고 있던 타대오 앞에 다시 포졸들이 들이닥칩니다. 그는 만들던 멍석 위에 무릎을 꿇은 채 큰 소리로 「사도신경」을 외우며 신앙을 고백합니다. 호송되던 길에 따라온 아내와 주막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며, 그는 가족을 위해 묻어 둔 금화를 필요할 때 꺼내 쓰라는 말을 남기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세속을 끊었다.” 1869년 음력 5월 23일, 지 타대오는 수원 북문 밖 공터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순교합니다.


우리는 자주 더 많이 이루고, 더 많이 가지고, 더 인정받아야 비로소 우리 삶이 의미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세상과 씨름하여 얻어 낸 수많은 승리도, 하느님과 씨름하지 않는 영혼에게는 사막의 신기루일 뿐입니다. 세속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던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는 통회의 밤을 지나 자신이 붙들고 있던 세속의 미련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나는 세속을 끊었다.”라는 그의 고백은 성취와 소유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삶을 멈추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는 믿음의 선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의 전구가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복음의 물가로 이끌어,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참된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종 지 타대오

저희가 성취와 소유로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고,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