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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비주명(莫非主命)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게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7-15 16:27:55 조회수 : 35

세상을 살다 보면 도무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함이나 참혹한 고통이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밀밭의 가라지’ 비유가 바로 이러한 우리네 인생을 똑 닮았습니다. 원수가 뿌린 가라지를 당장 뽑아버리려는 종들에게, 주님은 행여 좋은 밀이 다칠까 염려하시어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라고 달래십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단순한 인내가 아닙니다. 심판의 때와 방식을 오직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섭리를 온전히 신뢰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은 박해자들의 칼 앞에서도 맞섬이나 원망 대신, 언제 어디서나 항상 천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막비주명(莫非主命)으로 받아들이며 심판을 하느님의 손에 고스란히 돌려드렸습니다.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천주님의 명을 따르는 것이 흠숭”이라며 형장으로 나아갔습니다. 김원중 스테파노 복자 역시 “죽으나 사나 주님의 명에 순종하다가 천당에서 만나자.”라고 유언했으며, 참수 치명을 소원했던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이 억울하게 옥사하게 되자 “이 또한 막비주명이라.”라며 순종했습니다. 불의한 현실 앞에서도 하느님의 때를 바라보는 습관이 배어 있었기에, 가장 극한의 순간에도 그 굳건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신뢰는 자연스럽게 삶의 목적을 주님을 섬기며 영혼을 구하는 사주구령(事主救靈)에 두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심판을 하느님께 맡긴 사람은 더 이상 원수를 갚는 데 마음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를 영혼을 구하는 일로 가득 채웁니다. 이조이 막달레나 성녀는 가난을 탓하기보다 이웃 사랑에 매진했고, 원시보 야고보 복자도 혹독한 고문 속에서 “고통을 참아내면 주님과 성모님을 뵐 것”이라며 가족을 위로했습니다.


세속의 눈에는 박해받아 죽어가는 이들이 가라지에 치인 불쌍한 밀 같았겠지만, 주님께서는 수확 때에 의인들을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삶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그 영광의 빛이 이미 감옥에서부터 그들의 얼굴에 번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은총을 구합시다. 가라지 사이에서도 밀은 반드시 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