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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성지 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마지막 발자국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7-31 11:38:59 조회수 : 48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에 위치한 수리산 성지는 울창한 숲과 계곡을 품은 아늑한 곳입니다. ‘병목안’이라는 지리적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수리산으로 오르는 길은 마치 병의 목처럼 아주 좁은 외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좁은 입구를 지나면 이내 넓고 울창한 숲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조선시대 관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기에 이보다 최적의 지형은 없었을 것입니다. 성지는 이처럼 깊은 오지에 들어온 듯한 고요함과 평화로움으로 오늘날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수리산 성지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열린 성지’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처음 순례자를 맞이하는 성지 성당 앞뜰에는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의 아내 이성례 마리아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신앙으로 삶을 지탱했던 부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숭고한 신앙을 먼저 묵상하게 합니다.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교우촌을 일군 두 분은 조선의 두 번째 사제이자 12년간 초기 조선의 사목을 온전히 짊어졌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부모입니다. 아마도 이들의 신앙적 영향과 눈물의 기도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최양업 신부님의 탄생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오지로 온 교우촌 신자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분을 초월하여 서로를 돕고 위하는 희생적 삶을 살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늘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이 있었습니다. 성인은 본래 유복한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박해를 피해 고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을 겪다가 마지막으로 수리산 성지 일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지막 정주터인 수리산 성지 일대에서 친척과 교우들을 모아 산을 개간하고 담배를 심고 옹기를 구워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이곳의 담뱃잎은 질이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 최고의 상품이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이곳은 담배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습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희생과 봉사로 교우들은 수리산 공소를 세우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을 공소 회장으로 추대하여 끈끈한 신앙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좁고 험한 병목안 골짜기를 지나 마주하는 수리산 성지의 평화로움처럼, 고단한 삶의 좁은 문을 통과할 때마다 이곳에 서린 선조들의 숭고한 숨결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뿌린 피와 땀의 씨앗이 우리에게 사랑의 결실로 맺어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