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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종 김덕심 아우구스티노(1798~1841)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7-31 11:39:30 조회수 : 47

“주님, 저에게 정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지금은 마옵소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신의 회심 여정을 기록한 『고백록』에서 젊은 시절 바쳤던 기도를 회상합니다. 그는 육신의 쾌락을 좇는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기도가 너무 빨리 이루어질까 두려워했습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 “내일부터”라고 속으로 되뇌며 신앙의 결단을 미루는 그의 모습은 우리 내면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밀라노의 정원,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영혼의 깊은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던 그에게 어린아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집어라, 읽어라.” 그 소리에 이끌려 펼친 성경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라는 로마서의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대학자의 논변이 아니라 아이의 노랫소리를 통해, 화려한 수사학이 아니라 자신이 조악하다고 여겼던 성경 말씀을 통해 그는 오랜 방황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마지막 결단이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붙잡혀 옥고를 치른 뒤 1841년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하느님의 종 김덕심 아우구스티노도 처음부터 망설임 없이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830년경 경기도 구산 마을에서 글방 선생으로 머물던 이 선생에게 복음을 들었을 때, 형 성 김성우 안토니오와 동생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는 곧바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였던 김덕심은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듬해 어머니 청주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형과 동생은 유교식 상장례를 거부하고 신앙생활을 위해 한양으로 떠났지만, 그는 홀로 고향에 남아 모친의 삼년상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그에게는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과 하느님을 섬기는 삶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참된 효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망설임 속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여 배 밖으로 발을 내디뎠듯이, 김덕심도 모든 의문이 풀려 신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라고 아우구스티노가 고백했듯이, 그도 자신을 부르시는 주님께 마침내 삶을 맡겼습니다.


그는 형제들보다 늦게 신앙에 이르렀지만,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2년간 이어진 옥살이와 문초 속에서 심각한 회의와 질병을 겪었고, 깊은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 어둠을 지나온 그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모든 의문이 풀리고 두려움이 사라진 뒤에 내리는 결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확신의 결과가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며 내리는 결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바로 지금 부르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종 김덕심 아우구스티노,

저희가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저희 자신을 주님께 기꺼이 내맡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