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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하느님의 종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1801~1868)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8-06 16:59:46 조회수 : 34

1953년 1월 5일, 프랑스 파리 바빌론 극장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되었을 때, 관객과 평론가들은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부조리극의 탄생에 당황했습니다. 황량한 길과 나무 한 그루뿐인 무대 위에서 주인공 디디와 고고는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둘은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맥락 없는 대화를 계속할 뿐이고, 그들이 늘어놓는 말들은 의미가 되지 못한 채 공중에 흩어집니다. 두 시간이 넘는 공연 동안 고도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그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습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 채 목적 없는 희망에 매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블라디미르(디디):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고고): 가자.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느님의 종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는 경기도 광주 구산(현 하남시 망월동)의 양반 가문 출신으로, 순교자 성 김성우 안토니오와 김덕심 아우구스티노의 막냇동생이었습니다. 그는 이씨 성을 가진 마을 훈장에게서 신앙을 전해 받아 집안에서 가장 먼저 입교하였습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3월, 그는 가족들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끌려갔으나 집안에서 돈을 써 얼마 뒤 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형 김덕심 아우구스티노와 사촌 김주집 스테파노와 함께 다시 붙잡혀 기약 없는 옥살이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종 김윤심이 옥에 갇혀 지낸 기간은 모두 19년 5개월이었습니다. 함께 투옥되었던 형 김덕심은 2년 남짓한 감옥생활 끝에 병을 얻어 순교하였고, 같은 해 맏형 성 김성우의 순교 소식마저 전해졌습니다. 사촌 김주집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긴 옥살이를 견딘 그는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가문의 몰락에 대한 두려움, 형벌의 고통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결같이 신앙을 지키며 언젠가 순교로 신앙을 증언할 때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1858년 철종의 특사로 석방된 뒤에도 그는 비밀리에 사제를 모시고, 교회를 도울 방법을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만일 기회가 온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영광스럽게 순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라.”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1868년 병인박해 때 삼 대에 걸친 친족들과 함께 붙잡혀 마침내 순교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종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는 옥에 갇혀 있었으나, 그의 마음은 하느님 안에서 자유로웠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그의 발걸음은 날마다 순교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도 그를 절망에 빠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순교를 향한 그의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였기에 그는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사랑하며 살아갔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느님의 종 김윤심 베드로 알칸타라,

길을 잃고 희망마저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