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성당을 나와 계곡을 건너면 성인 묘역으로 오르는 십자가 산길이 이어집니다. 녹음이 울창하게 우거진 수리산의 나무들 사이로 주님이 걸어가신 고난의 ‘십자가의 길 14처’를 마주합니다. 이 길은 인위적으로 만든 길이 아니라 거친 흙과 돌부리가 그대로 있고 사철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치는 순수한 자연의 길입니다. 박해시대에 산길을 오르며 신앙을 지켰던 선조들의 발걸음과 2천 년 전 골고타 언덕으로 오르시는 예수님의 고통을 동시에 묵상하게 합니다. 한 처, 한 처 기도하며 오르는 가파른 기도길에서 우리는 지친 일상에서 짊어진 나의 십자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는 박해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순교자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면, 산속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마련된 야외 미사터에 이릅니다. 십자가의 길을 마치고 자연에서 드리는 미사는 상상만으로도 큰 은총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거대한 수리산의 푸른 숲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 순례자를 깊은 묵상에 빠지게 합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보다 더욱 아름다운 빛이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는 자연이 바치는 장엄한 성가가 되어 창조주 하느님을찬양 합니다. 야외 미사터 위쪽으로는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묘역(가묘)이 지친 순례자를 위로하듯 맞이합니다. 묘역 바로 옆에 유해를 모시어 성인을 기리고 있으며, 그 위쪽으로 성모 동굴이 있어 순례 여정을 은혜롭게 마무리 할 수 있습니다.
수리산 성지의 순례 여정은 마치 하느님이 정교하게 짜놓은 각본 같습니다. 낮고 소박한 고택 성당에서 일상에 지친 마음을 정리하고, 가파른 흙길의 십자가의 길에서 내 안의 십자가를 봉헌하게 만드는 이 은혜로운 순례 여정 속에서 순례자는 영혼의 치유를 얻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최경환 성인의 순교신앙을 묵상해 봅니다.
험난한 고난의 길 끝에는 반드시 주님이 준비하신 부활의 영광과 평화가 기다리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수리산 성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