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에서 ‘티로’와 ‘시돈’이라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들은 호수를 떠나 겐네사렛 땅에 이르렀다”(마태 14,34). 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과 막달라 사이 평야지대인 겐네사렛 지방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신 것입니다. 티로와 시돈은 이방인들의 지역입니다. ‘물러가셨다.’는 ‘공개적인 활동을 자제하셨다.’로 해석할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의 갈등이 심해지자 이방인의 지역으로 잠시 몸을 피하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예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메시아를 부르는 호칭으로, 가나안 부인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습니다. ‘소리 질렀다.’라는 표현은 ‘울부짖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라고 하였으니, 딸의 모습은 매우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외면합니다. 그 모습을 본 제자들이 예수님께 청합니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들을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방 여인이 소란을 피우는 것이 몹시 불편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쫓아내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이방인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백인대장의 청을 들어주셨고 이방인들이 사는 게라사 지방에서 마귀를 쫒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순서를 알려주십니다. 복음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해지고 그다음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습니다. “엎드려 절하였다는 것은 땅바닥에 완전히 닿은 상태로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살려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진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경멸과 무시의 표현으로 ‘개’라고 불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여인을 무시한 것일까요? ‘강아지’라는 표현은 애완견을 뜻합니다. 집안에서 키우는 강아지는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여인이 응답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가나안 부인의 믿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저는 주인의 식탁 아래에 있는 강아지가 맞습니다. 저는 자녀들의 빵을 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부스러기라도 저에게 주십시오. 제발 자비를 베푸시어 저의 딸을 살려주십시오. 주님 말고는 제 딸을 살려줄 분이 없습니다.’
제대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해 본적이 있습니까? 큰 소리로주님을 불러본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 앞에서 예의를 갖춰야 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가나안 여인같은 믿음이 없어서일까요? 오늘날 우리에게는 식탁 밑 부스러기라도 청했던 가나안 여인의 강한 믿음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