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이스라엘의 최북단에 있는 도시로, 갈릴래아 호수에서 60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유다의 임금이었던 헤로데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이곳을 선물받고 황제를 기리는 의미로 신전을 지었습니다. 헤로데가 죽은 뒤 갈릴래아 북부를 다스리게 된 그의 아들 헤로데 필리포스가 이곳 이름을 ‘카이사르에게 바친 도시’ 곧 ‘카이사리아’라 정했는데, 이후 자기 이름을 덧붙여 ‘카이사리아 필리피’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중해안에도 헤로데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이름을 따서 붙인 ‘카이사리아’라는 항구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카이사리아 필리피에 가신 것일까요? 성경에서는 그 이유까지 밝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복음을 전하러 가셨을 것입니다.
카이사리파 필리피에 도착하시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했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마르 6,15-16).
유대인들의 믿음 중 하나는 메시아가 오기 전 엘리야가 와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가 아니라 메시아를 준비하는 인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특별한 예언자로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환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알려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의 믿음이 궁금하신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로 고백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많은 기적을 보았기에 믿게 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적을 본 사람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이 말씀에 주목해 봅시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것은 나의 노력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은 은총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