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남한산성 주변의 울창한 숲 위에 내리쬐지만,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는 미쳐 닿지 못합니다. 울창한 나무가 만들어주는 깊은 그늘 덕분에 산길에서는 오히려 기분 좋은 시원함마저 느낍니다.
현재 경기도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2014년 등재)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은 늘 등산객과 관광객들로 북적입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이 간직한 붉은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순례자가 되어 이곳을 찾습니다.
이곳을 처음 찾는 순례자들은 ‘왜 이 높고 푸른 산 위에 있는 성(城)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을까?’하는 의문을 품게 됩니다. 조선 후기 당시 남한산성에는 국가의 군사와 행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한 ‘광주 유수부’가 있었습니다. 조정의 눈을 피해 깊은 산속 교우촌에 숨어 살던 신자들은 박해 때마다 그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붙잡혀 이 가파른 산길을 따라 압송되었습니다. 남한산성을 오르면서 우리를 위로한 두터운 숲 그늘은, 어쩌면 당시 피눈물을 흘렸던 선조들의 고통 소리를 묵묵히 덮어주었던 장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슬픔이 자리하기도 하였습니다.
남한산성 성지는 잊혀가던 무명의 치명터를 발굴하기 위한 여러 신부님들의 노력끝에 1998년에야 성지로 공식 선포되었습니다. 당시 남한산성의 동문 앞에는 이곳이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양철로 된 초라한 안내문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2004년 9월, 남한산성 성지에서는 순교자 현양비를 건립하고,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무명 순교자를 본격적으로 현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양비가 세워지던 당시만해도 어렵게 매입한 건물 1층에서 미사를 봉헌하였기에 늘어나는 순례객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후 2015년 4월, 철근 콘크리트와 한옥 양식이 어우러진 지상 2층 규모의 아름다운 성당을 완성하여 봉헌하였습니다. 새로운 성당이 들어서면서, 구(舊)성당 건물은 남한산성 성지의 첫 순교자인 한덕운 토마스 복자를 기리는 ‘토마스홀’로 리모델링하고 순례자들을 위한 영적 쉼터가 되었습니다.
잊혀있던 치명순교터가 이제는 역사와 종교, 자연이 함께 숨 쉬는 영성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