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여름 휴가철이 되면 제가 살고 있는 성지를 찾는 순례객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성지를 찾아 주시는 한 분 한 분이 감사하지만, 때로는 성지 경내의 계곡에 발을 담그고 피서를 즐기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을 조심스럽게 돌려보내고 나면, 우리 성지가 세상이 줄 수 없는 쉼을 알려 주는 성지가 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천진암 성지는 퇴촌이라는 마을 끝자락, 깊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퇴촌(退村)’이라는 이름에는 조선의 개국공신 조영무가 벼슬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낸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천진암 성지는 ‘물러난 마을’에서도 다시 한참을 물러난 곳에 자리한 셈입니다.
복음서에도 그런 물러남의 자리가 있습니다. 몰려드는 군중과 끊임없는 가르침, 병자들을 치유하는 고된 일상 가운데서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또한 경쟁과 서열에 마음을 빼앗기기 쉬웠던 제자들에게 윗자리가 아니라 끝자리에 앉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외딴 곳과 끝자리는 세상에서 밀려난 자리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참된 쉼과 삶의 가치를 배우는 자리입니다.
하느님의 종 이 요한은 1829년 경기도 죽산 남광리, 오늘날 안성시 보개면 남풍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교리를 배우며 신앙을 익혔지만, 장성한 뒤 외교인들 사이에서 살아가다보니 신앙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교식 제사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그의 양심에 큰 부담이었습니다. 마침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고향과 익숙한 삶의 자리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가 찾아간 곳은 경기도 광주 먹방리, 오늘날 곤지암 일대의 산골이었습니다.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낯선 곳, 남의 눈을 피해 들어간 그 산골에서 그는 마음껏 기도문과 교리를 외웠습니다. 언제라도 붙잡힐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곳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머무는 평화의 자리였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자 이 요한은 다시 충청도 충주로 피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도 광주의 포교들에게 체포되어 남한산성 관가로 끌려갔습니다. 관장 앞에서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죽어도 천주를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숨어 살던 사람이 이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교수형으로 순교하며 주님께서 말씀하신 끝자리를 선택합니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순한 떠남보다 깊은 물러남이 더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욕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것, 앞자리를 차지하려 애쓰기보다 끝자리에 앉아 보는 것, 그리고 그 외딴 곳에서 조용히 하느님 앞에 머무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종 이 요한의 전구가 이 무더운 여름날 우리를 하느님 안의 참된 쉼으로 이끌어 주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종 이 요한
저희가 욕심과 걱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하느님 안에서 참된 휴식을 얻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