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 발장은 굶주린 누이와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친 죄로 시작해, 거듭된 탈옥 시도로 모두 19년을 복역한 뒤 출옥하여 미리엘 주교를 만나게 됩니다. 장 발장이 그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났다가 붙잡혀 돌아왔을 때 주교는 그를 고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촛대까지 내어주며 새로운 삶을 살라고 합니다. 장 발장이 그날 받은 것은 단지 은식기와 은촛대가 아니었습니다. 한 인간으로 존중받은 기억, 자신의 죄보다 더 큰 자비를 입은 기억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자신의 삶을 자선과 선행으로 채워 갑니다.
하느님의 종 서태순 아우구스티노는 경기도 양지에서 천주 신앙을 믿던 부모 곁에서 교리를 배우고 실천하며 성장했습니다. 훗날 그는 박해를 피해 사위 이조여 요셉과 함께 광주 뫼룬리(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로 이주하여 산골짜기에서 부모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끊임없이 도왔다고 합니다. 그는 숨어 있어야 했지만 사랑까지 숨기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켜야 할 이유가 많았던 시대에 더 적극적으로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광주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볼리외 신부를 자신의 집에 모시며, 신부가 한국어를 익히고 성사를 집전하며 교우들을 돌볼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신부댁 주인’을 자처하며 목숨을 걸고 사제를 모셨던 그는, 1866년 사위 이조여 요셉과 함께 체포되어 남한산성 유수부로 끌려갔고, 혹독한 매질 끝에 순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선은 풍족함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는 것이 있어 나누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받은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기에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바친 렙톤 두 닢도 풍족함에서 나온 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진 것이 거의 없었지만,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하느님께 맡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나눔은 얼마나 남아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 누구에게서 왔는지를 아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9).
서태순 아우구스티노는 자신이 거둔 곡식도, 머무는 집도, 가진 재산도,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생명까지도 온전히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 받은 것이기에 다시 주님을 위해 내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를 돕고, 사제를 위해 집의 문을 열고, 끝내 신앙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은 그의 삶은 ‘천주께 받은 것이니 천주께 돌려드린다’는 하나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선택한 죽음이 아닙니다. 날마다 받은 은총을 기억하며 자신을 내어놓아 온 한 사람이, 마침내 자기 생명까지 사랑으로 돌려드리는 마지막 봉헌입니다.
하느님의 종 서태순 아우구스티노,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랑으로
저희를 이끄시고,
소외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