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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자리 하느님의 종 정양묵 베드로(?~1867)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09-22 15:35:48 조회수 : 43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영화 《블랙 스완》의 주인공 니나는 완벽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그런 니나의 곁에는 언제나 어머니 에리카가 있습니다. 한때 발레리나였던 어머니는 딸의 성공을 누구보다 바라며 먹는 것부터 연습과 일상까지 세심하게 살핍니다. 성인이 된 딸의 방은 여전히 분홍빛 인형들로 가득한 어린아이의 방이고, 어머니는 딸의 몸에 난 작은 상처까지 확인하려 합니다. 사랑과 보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관심은 점점 간섭과 통제가 되고, 완벽해야 한다는 니나 자신의 강박과 뒤엉켜 그녀를 숨 막히게 합니다. 그토록 바라던 《백조의 호수》의 주역으로 발탁된 니나는 마침내 완벽한 춤을 추지만, 완벽함을 향한 강박은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고 맙니다. 사랑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지 못할 때,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서로에게 숨 막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천 단내 출신의 하느님의 종 정양묵 베드로는 정은 바오로의 재종손, 곧 사촌 형제의 손자였습니다. 일가친척들이 정은 바오로를 비난하며 배교를 권유할 때에도 정양묵은 그를 존경하며 그의 신앙을 본받고자 했습니다. 병인박해가 닥쳐 정은 바오로가 포졸들에게 붙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자 정양묵은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아내가 그의 옷을 붙들고 만류하자 그는 “재종조께서 잡히신 이때에 어찌 예수님의 모범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소.”라고 말하며 길을 나섰습니다. 남한산성 감옥에 갇힌 두 사람은 얼굴에 물을 뿜고 한지를 여러 겹 붙여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백지사형으로 함께 순교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양묵 베드로는 자신이 따르던 어른의 곁에 있었습니다. 『치명일기』는 두 사람이 순교할 때 “안색이 태연하고 외양이 단정 엄숙하였다.”라고 전합니다.


사람이 우리 곁에 머무는 데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붙잡아 둘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스스로 머물고 싶게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까지 대신 결정하려 할 때, 우리의 사랑은 오히려 상대의 숨을 막을 수 있습니다. 정은 바오로가 어떤 말과 표양으로 정양묵에게 귀감이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양묵은 박해가 닥친 순간에도 나이 든 어른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붙잡혀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를 따라나섰습니다. 마지막에는 두 사람 모두 숨이 막혀 죽었습니다. 그러나 정양묵이 마지막까지 머물기를 선택한 자리는 자신이 존경하고 따르던 어른의 곁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보였고,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좋은 어른은 사람을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두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모습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붙잡기보다 바라봐 주고, 내 뜻대로 이끌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며,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숨 쉴 자리를 내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종 정양묵 베드로,

저희가 서로에게 숨 쉴 자리를 내어주며

함께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