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엘리야의 마지막 길에 제자 엘리사는 끝까지 함께했습니다. 엘리야가 베텔에 머물라고 해도, 예리코에 머물라고 해도, 스승과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고 스승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저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며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요르단을 건넜고, 불 병거와 불 말이 두 사람을 갈라놓은 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닥쳐온 스승의 부재 앞에서 엘리사는 자신의 옷을 찢으며 외칩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그러나 엘리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땅에 떨어진 엘리야의 겉옷을 집어 듭니다. 오래전 부르심의 자리에서 겨릿소를 몰며 쟁기질하던 자신에게 스승이 걸쳐 주었던 바로 그 겉옷입니다. 조금 전 스승과 함께 건넜던 요르단으로 돌아온 엘리사는 이제 홀로 강을 건너야 합니다. 자신의 손에 들린 스승의 겉옷으로 물을 치며 “주 엘리야의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라고 외치자 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이 생깁니다. 이제 엘리사는 영적 아버지가 남긴 겉옷을 입고 스승의 길을 자신의 발로 걷기 시작합니다.
충청도 내포에서 태어난 하느님의 종 여기중은 소년 시절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장성하여 가정을 이룬 뒤에도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계명을 지키며 살기 어려워지자 가족과 함께 깊은 산골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여기중은 죽산 포교에게 체포되었습니다. 포교들은 재물과 다른 교우들의 행방을 대라고 다그쳤지만, 그는 모진 형벌에도 끝내 아무도 밀고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기중은 죽산 관아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아들 여정문이 붙잡히자 그의 아내는 남편과 함께 죽겠다며 스스로 따라나섰습니다. 부모가 끌려가는 모습을 본 열다섯 살 아들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함께 죽산으로 끌려갔고,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순교했습니다.
하느님의 종 여기중이 가족에게 남긴 것은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끝까지 벗지 않았던 믿음이었습니다. 아들 여정문은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남은 그 믿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도 그 믿음을 입고 같은 길에 섰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다시 그 가족에게로 이어진 믿음의 겉옷. 그들이 삶의 자리에서도 죽음의 자리에서도 입고 있던 그 옷은 결국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도 그렇게 순교자들이 남긴 믿음의 겉옷을 입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들이 입었던 그리스도를 우리도 입고, 그들이 지켜 낸 믿음 안에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이제 우리가 입고 살아가는 믿음도 누군가의 어깨를 덮어 주고, 그가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신앙의 유산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종 여기중,
저희가 물려받은 믿음의 겉옷으로
뒤따르는 이들의 삶을 따뜻이 감싸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