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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하느님의 종 정덕구 야고보(1845~1867)

작성자 : 홍보국 등록일 : 2026-10-07 10:57:34 조회수 : 41

1861년, 죽림굴에 몸을 숨긴 최양업 신부는 자신을 추적하는 포졸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갈 희망이 없다며 마지막 편지에 절박한 기도를 남깁니다. “저희를 재난에서 구하소서. 엄청난 환난이 너무도 모질게 덮쳐왔습니다. … 당신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그들을 대항하여 설 수가 없습니다.”


사방에서 포졸들이 조여 오는 순간에 남긴 이 기도는 최양업 신부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밤중 인기척에 놀라 잠에서 깨고, 포졸들의 발소리에 숨을 죽이며,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또 다른 피신처를 찾아야 했던 사람들. 살기 위해 달아나면서도 언제까지 달아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신앙인의 기도였을 것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용인 삼배울에서 옹기를 굽던 하느님의 종 정덕구 야고보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광주 포교들이 들이닥쳐 삼촌 정여삼 바오로와 예비신자 이화실을 비롯한 온 집안 식구를 체포했습니다. 남한산성으로 끌려간 가족들에게 쇠고랑을 채운 포졸들은 재물을 내놓고 교우들을 밀고하라며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문초에 지친 포졸들은 정덕구에게 술과 고기를 가져오라며 잠시 풀어주었습니다. 정덕구가 가져온 술을 마시고 포졸들이 만취하여 잠들자 그는 가족들과 함께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매질로 정신을 잃은 삼촌 정여삼과 이화실까지 데리고 나오지는 못했고, 두 사람은 머지않아 순교합니다. 그날부터 정덕구의 긴 도피가 시작되었습니다.

포졸들을 피해 가족과 함께 이곳저곳으로 숨어 다니다 충청도 공주 점촌까지 내려갔지만, 그곳에도 박해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다시 한양으로 올라갈 채비를 하던 중 그의 앞에 포졸들이 나타납니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서 가자.”하고 천둥같이 호령했다고 전해집니다. 죽산으로 끌려간 그는 1867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순교하여 천상 탄일을 맞았습니다.


우리에게도 피하고 싶은 일들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미루고, 만나야 할 사람을 피하고, 해야 할 말을 삼키며, 감당해야 할 책임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늘을 넘깁니다. 그렇게 미뤄둔 일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베드로는 주님께 가기 위해 물속으로 무작정 뛰어들지 않고 벗고 있던 겉옷부터 챙겨 입습니다. 필요한 것은 계속 미루는 일도, 무턱대고 앞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용기도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헤아리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찾는 일입니다. 나의 능력을 벗어난 일은 주님의 섭리에 맡기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현실에서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과 함께 오늘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길이 없어 보이는 그 자리에도 길이신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신앙은 미래의 지도를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오늘 걸어야 할 만큼의 빛을 받아 한 걸음 내딛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종 정덕구 야고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저희를 길이신 주님께 이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