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에서 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은 평생 아들 윌에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거인을 만나고, 서커스단에서 일하고,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합니다. 꾸며낸 이야기 말고 진짜 아버지의 모습을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 윌입니다. 윌은 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빠져나와 강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강가에는 아버지가 평생 이야기해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윌은 차에서 아버지를 들어 올립니다. 쇠약해진 아버지의 몸은 이상하리만큼 가볍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품에 안고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아버지는 마침내 커다란 물고기가 되어 강물 속으로 헤엄쳐 갑니다.
1762년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조상덕 토마스는 효성이 지극했습니다. 1800년 말 아버지 조동섬 유스티노가 신앙 때문에 체포되자 그는 옥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머물며 하루 두 번씩 음식을 가져다드렸습니다. 아버지가 서울로 이송되자 뒤를 따라갔고, 이듬해 함경도 무산으로 유배되자 다시 먼 길을 함께했습니다. 형벌과 여독으로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자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비신자들까지 그의 효성에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양근 군수는 포졸들을 무산까지 보내 토마스를 붙잡아 오게 했습니다. 포졸들이 도착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이냐?” 늙은 아버지를 홀로 두고 떠나야 했지만 토마스는 슬픔을 누르며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발 한발 따라가는 것 이외는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좋다. 이제는 네가 떠나는 것을 안심하고 후회 없이 보내겠다.” 그것이 부자의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양근으로 끌려온 토마스는 혹독한 형벌에도 신앙을 지켰고, 서른아홉의 나이로 옥중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성경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라는 계명을 전합니다. ‘공경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무겁다.’는 뜻을 지닌 어근 כבד(카베드)에서 나왔습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합당한 무게를 두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우리 문화 안에 깊이 자리한 ‘효(孝)’의 정신으로 받아들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라고 가르쳤습니다.
한때 우리를 업어주던 부모의 등은 점점 작아지고, 언젠가 우리는 어느새 나이 든 부모의 무게를 자신의 등에 받아들여야 할 때를 맞습니다. 병들고 쇠약해진 몸은 점점 가벼워지지만, 그 존재의 무게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질병과 간병, 부양의 어려움만으로 노년의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내어준 그들의 세월과 수고, 그 삶에 켜켜이 쌓인 지혜와 신앙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 성경의 ‘공경’과 우리 문화의 ‘효’가 만나 이루어 낸 이 신앙의 품성은 우리가 소중히 이어가야 할 유산입니다.
하느님의 종 조상덕 토마스,
저희가 부모를 통해 배운 하느님의 사랑을
그들의 곁에서 다시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