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내성가정 성지 도보 순례의 마지막 여정은 박해 시대 교우들이 포졸들의 눈을 피해 실제 숨어 살며 신앙을 지켜냈던 슬프고도 거룩한 현장, 바로 ‘검은 바위’와 ‘굴바위’로 이르는 깊은 산길입니다.
예수성심상을 지나 길고 거친 이 산길을 걷는 동안, 순례자는 화려한 말 대신 온 삶으로 신앙을 증거했던 선조들의 처절한 숨소리와 마주하였습니다. 예수성심상에서 와룡산 계곡을 따라 얼마간 더 걸어가면, 거대하고 어두운 암석인 ‘검은 바위’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정은 바오로 순교자가 포졸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숨죽여 기도하던 은신처입니다. 자칫 가족들에게 해가 될 것을 염려하여 어두운 산길 속을 걸어 이 외딴곳까지 와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거친 바위 위에 올라앉아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이겨냈을 순교자의 굳건한 신앙이 검은 바위 표면마다 배어 있는 듯합니다. 현재, 이 검은 바위 아래에는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어, 깊은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순례자들에게 고요하고 영적인 기도처로서의 경건한 공간이 되어줍니다.
검은 바위에서 다시 발걸음을 옮겨 산세가 한층 깊어지는 골짜기로 내려가면, 천연 동굴 형태를 띤 ‘굴바위’에 다다릅니다. 포졸들에게 가산을 몰수당하고 쫓겨난 정은 바오로 순교자의 가족들이 모여 살던 가슴 아픈 피난처입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불 한 번 마음 놓고 피우지 못한 채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냈을 선조들의 애달픈 숨결이 머문 곳입니다.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동굴 속에서 도리어 천국을 꿈꾸었던 그들의 순수한 믿음 앞에, 오늘날 너무나 풍요롭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주차장의 오솔길에서 시작해 십자가의 길과 예수성심상을 거쳐 검은 바위와 굴바위에 이르기까지, 단내성가정 성지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가정’입니다. 목숨을 바쳐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선조들처럼, 이제는 우리가 나에게 맡겨진 가정을 ‘성가정’으로 일구어야 할 차례입니다. 와룡산의 푸른 침묵 속에서 얻은 영적 위로와 순교자들의 굳건한 은총을 마음에 품고, 세상 속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하며 순례의 마지막 발걸음을 거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