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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치 주먹밥

작성자 : 홍보실 등록일 : 2021-06-04 11:06:01 조회수 : 130

대학입시에 실패한 저는 목포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의 단칸 자취방에 얹혀 지냈습니다. 온종일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밥 짓고 청소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습니다. 서울에 있는 재수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섬에 사는 아버지의 경제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희망 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가슴은 늘 텅 비어 있었습니다.


어느 봄날 섬에서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경제력도 없는 어머니에게 제 사정을 말해봐야 별도리가 없을 것이었습니다. 한숨만 내쉬던 제게 어머니가 말도 되지 않는 제안을 했습니다. 장학생으로 뽑힐지도 모르니 재수학원 시험이라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류학원은 그냥 붙기도 어렵다는데, 내가 어떻게 장학생이 되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달리 길이 없었던 저는 어머니의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서울 생활은 애당초 꿈도 꾸지 말라던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가서 밥은…” 하고 딱한 얼굴을 했더니, 돈을 마련할 구멍이 없었던 어머니는 이틀 치 주먹밥을 싸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잠은…” 하자, “너는 젊은 놈이니까 독서실 바닥에 신문지 깔고 자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어렵게 마련해주신 기차표와 이틀 치 주먹밥을 들고 그렇게 서울행 기차를 탔습니다. 


어머니 말대로 독서실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자고, 어머니가 싸준 주먹밥을 먹으며 시험을 치렀습니다. 어머니의 주먹밥에는 어려운 우리 가정이 담겨 있었고 제 미래도 담겨 있었습니다. 시험을 본 두 학원 게시판에는 제 이름이 모두 ‘장학생’으로 붙어 있었습니다. 서울은 절대 안 된다던 아버지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새로운 세계와도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어려움을 헤쳐 갈 지혜는 배움이나 돈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섬에서 저의 초점 잃은 눈을 떠올리며 어떻게 아들에게 희망을 줄까 잠자리에서도 늘 고심했을 것이고, 그래서 주먹밥과 시멘트 바닥 잠자리도 생각해 냈을 것입니다. 

제가 대학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우리 집이 여유로웠다면, 그런 주먹밥도, 그런 극적인 기쁨도 맛보지 못하고 싱거운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요.


글 | 윤 학 미카엘(가톨릭다이제스트, 흰물결아트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