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심리학과 교수인 코리 키스는 자기 수업인 ‘행복의 사회학’ 첫 시간에 학생들은 무엇을 가장 추구하는지 묻습니다. 대부분 행복을 이야기했습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첫 번째 과제를 줍니다.
“오늘 오후에 밖에 나가서 행복해지는 일을 해 보세요. 그리고 그 행복이 한 시간, 더 나아가 오후 내내 이어지는지 알아보세요.”
다음날 수업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과제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오후 내내 행복감을 유지한 학생이 있었을까요? 그저 기분 좋은 하루였을 뿐, 한 시간 이상 행복을 느꼈다고 말한 학생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 이 점을 떠올려 봅니다. 행복을 한 시간 이상 쭉 느끼기란 불가능했습니다. 하루 24시간 내내 행복하기만 하다면 이런 사람이 더 문제 아닐까요? 행복은 ‘나’의 전체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가지고 있는 많은 감정 중에서 하나일 따름이었습니다. 한 가지 감정에만 쌓여 있다면 도저히 살 수 없습니다. 행복을 위해서 분노, 공포, 혐오, 놀람,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있어야 했습니다.
행복을 원한다면 다른 부정적 감정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고통과 시련 없이 행복만 쏙 뽑아서 간직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그렇게 된다면 더 큰 아픔이 자기에게 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행복만 주시지 않은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 때로는 어렵고 힘든 시간도 우리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100% 행복만을 원하고 있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베드로 사도의 동생인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그는 형과 함께 호수에서 어망을 던지고 있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는 말씀에 곧바로 그물을 던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곧바로 따랐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 기쁜 소식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안드레아 사도는 예수님처럼 십자가 위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름이 결코 행복만 있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고통과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름이 진짜 행복이 되어 기쁜 소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따름으로 100% 행복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진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아프리카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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