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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8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4-07 조회수 : 137

당신은 누구십니까?

 

 

얼마나 이해력이 떨어지면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기에 이를 수 있을까 자못 궁금합니다. 실은 이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열고 닫음의 문제일 것입니다.

복음저자 요한도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질문을 이 자리에 삽입해 놓았을 것입니다. 완고한 마음이 한 인간을 어디까지 휘어버리게 할 수 있는지 드러내려는 의도가 역력합니다.

한편, 이 질문 속에서 우리는 예언적인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세상과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생명을 스스로 내놓으실 것이라는 예언을 찾아보는 일입니다. 마치 대사제 가야파와(요한 18,14) 총독 빌라도가(요한 19,22) 그렇게 할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완고한 바리사이들에게 이르십니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성경에서 죽음은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삶, 곧 영적인 죽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것이 육체적 죽음이든 영적 죽음이든, 이러한 죽음을 생명으로 이끌 능력을 지니고 계시지만, 예수님이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오신 분임을 믿어 고백해야 함이 전제됩니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가 아니라 아래의 삶, 세상에 속한 삶을 고집할 때, 참 생명에 이른다는 것은 요원한 일임을 밝히십니다. 그러니 그들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참되게 받아들이는 삶만이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을 벗어나게 해주지만, 마음을 닫아버린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그분 말씀을 알아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의 길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성자이신 예수님을 믿어 그분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 곁으로 건너가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그들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결국 믿으려 하지 않는 자들의 모든 질문은 예수님의 신원에 관한 질문 안으로 규합됩니다: 당신이 누구요?”

예수님은 궁극적인 이 질문에 지금까지 말씀과 행적으로 열정적으로 답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조차 마음의 문을 열어 당신을 알아보고 믿을 수 있도록 최후의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십자가에 들어 올려짐, 십자가상 죽음을 분명히 말씀하시며, 그것이 바로 당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성부의 뜻임을 밝히십니다. 말씀 하나, 행적 하나, 어느 것이나 성부의 뜻을 따르는, 그분 마음에 드는 일임을 선포하십니다.

이처럼 믿음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오신 분이며, 그분의 뜻을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따르신 분임을 알아듣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당신이 누구요?”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부의 뜻에 따라 자신을 온전한 희생제물로 바쳐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 파견되신 분입니다. 그러하기에 십자가상 희생은, 아니 십자가는 세상과 인류 구원의 표징, 세상과 인류 사랑의 징표입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시작한 오늘 하루,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이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구원의 표징이 되고 사랑의 징표가 되는 거룩하고 은혜로운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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