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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14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4-13 조회수 : 104

장례를 위한 향유

 

 

어제 주님 수난 성지주일 전례는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사로 시작되었습니다. 기념행사에서 봉독된 복음 말씀에 의하면(루카 19,28-40),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출발하신 장소가 벳파게와 베타니아 가까이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두 마을은 올리브산 정상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 도보로 10거리의 가까운 이웃 마을입니다.

 

요한복음이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을 포함하는) 공관 복음과 여러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예수님의 구원사업 절정 부분인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기사에서만큼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 구원사업의 절정 부분이 그만큼 중요함을 대변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요한복음에 따르면, 오늘 복음이 전하는 사건이 있고 난 다음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교회는 공관 복음과의 조화를 고려하고 논리적 순서를 감안하여 예수님의 일정을 정리해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벳파게의 이웃 마을인 베타니아를 방문하십니다. 이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어(요한 11장 참고), 오늘 식탁에는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의 산증인인 라자로도 함께합니다. 마르타는 여전히 시중을 들고 있어 정신이 없는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장례 날을 위한 예식,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한 예식을 소리 없이 집행합니다.

향유를 머리가 아니라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림으로써 마리아는 자기의 겸손과 사랑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사랑에서 나온 이 행위를 당신이 무덤에 묻히심을 미리 보여주는 행위로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의 묻히심은 그분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로도 예고됩니다. 사랑으로 거행하는 마리아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다로서는 도저히 통찰할 수 없었기에, 이에 대한 이의 또는 저항의 책임이 전적으로 그의 탓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축제, 곧 예수님을 기념하여 마련된 축제의 잔치와 예수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기쁨을 공유하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가 앞으로 할 일 또는 그 일을 통한 그의 운명 또한 예고되고 있는 셈입니다.

 

죽었던 라자로는 되살아났지만, 라자로를 죽음에서 불러내신 예수님은 죽음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라자로의 부활이 예수님의 죽음을 앞당길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의 지도자들 가운데 한 무리인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만이 소유하고 계신 생명에 관한 권한을 나누고 계신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희미한 기억조차 지워버리기 위한 시도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 나오신 분,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지도자들의 악의적인 집요한 행태입니다. 사람의 생명, 곧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 청하며 화해의 제사를 올려야 할 사제들, 그 가운데서도 수석 사제들이 사제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소리 높여 찬미했던 호산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 죽음의 그림자만 그분 주위를 감쌉니다. 주님은 이 운명을 성부의 뜻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마주해 나가십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나서는 가운데,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자랑하는 하루,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겠다고 다짐하며 향유 냄새 가득한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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