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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30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4-29 조회수 : 123

심판과 구원

 

 

우리는 교리 시간이나 교리서를 통해 하느님의 속성, 곧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워 알고 있습니다. 한없이 선하시고 사랑 넘치시고 완전하시고 자비하시고 의로우시고... 등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은 상호 충돌하는 개념들로 자리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자비로우시고 사랑 넘치시는 하느님이 어떻게 누군가를 심판하고 단죄하실 수 있을까? 오늘 복음 말씀은 사랑과 심판과 단죄와 구원이라는 개념을 한 데 모아서 설명해 주고 있기에, 예수님의 말씀 자체에 특별한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건네시는 첫 번째 확언은 하느님은 시상과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며, 이 사랑의 첫 번째 증거는 당신의 외아들을 내주셨다는 사실입니다이 선물은 수동적인 선물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서 적극적으로 마련된 선물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마련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이 우리를 향해 보여주시는 몸짓에는 사랑과 선성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심판과 단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복음저자 요한이 전해주는 예수님의 선언에 따르면, 스스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존재는, 단죄받은 이로 스스로 자리하는 존재는 바로 인간 자신입니다.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따라서 그리스도의 영향권에서 빠져나감으로써 인간 스스로 구원을 마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과 인류의 구세주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자발적인 거부 행위를 통해 인간은 구원의 영역을 벗어나고 맙니다.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믿음을 부여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신데, 과연 인간이 거부할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전적으로 수사학적 질문, 무엇인가를 강조하거나 설득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표현들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만들어낸 질문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온전한 자유의지로 선택한 거부 영역에 예수님은 자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저 거부에 관한 질문을 거부 행위에 관한 질문 위에 올려놓으실 뿐입니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더욱이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결심한 거부라는 잘못 대한 책임을 주님께 전가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분 말씀으로 우리가 한 일이 드러날까 두려워 예수님을 거부하면서도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진리를 실천하여 빛으로 나아가는 삶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기 위하여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최소한 빛을 따르는 삶, 진리를 실천하여 이를 밝히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어둠을 쫓아내고 빛을 따르는 삶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을 내뿜는, 활기찬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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