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타인은 지옥일까요?
한 가지 사회적 실험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실시되었습니다. 도시 곳곳에서 20개의 지갑을 떨어뜨립니다. 이 지갑 안에는 돈과 명함이 있었지요. 이는 지갑 주운 사람이 주인에게 연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지갑은 과연 얼마나 회수되었을까요?
사람들은 한 25% 정도만 회수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80%가 회수되었습니다.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지옥이 아닌 천국이 아닐까요? 어려움이 생겼을 때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도 말합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어려움이 있을 때, 희생과 봉사, 나눔은 평소보다 더 늘어났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때를 떠올려보십시오. 당시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앞다투어 나눔을 실천했고, 봉사활동을 자처했습니다. 지난 의성-안동 산불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시민들이 하루빨리 산불이 진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북 산불 피해 긴급 모금에 참여했고,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부정적인 말에만 귀담고 있기에 우리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기본적으로 천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귀한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님에 관한 증언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 증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35.36)
영원한 생명은 믿는 이에게만 주어진다고 하십니다. 반대로 믿지 않는 이에게는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른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삶을 살면서, 영원한 생명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을까요?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사람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 삶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거부하고 멋대로 살아가는 삶입니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 반대편으로 가는 줄로 착각하고 혼자서 주님을 거부하고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을 믿는 삶, 그래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희망은 우리가 소파에 앉아 손에 움켜쥔 채 행운을 비는 복권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서 문을 부수는 도끼 같은 것이다(레베카 솔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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