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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5-08 조회수 : 121

누가 ‘착한 뜻’을 소유하게 되는가?  
 
 
오늘도 성체성사에 관한 교육이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오는 이는 누구나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신 이들이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 그 사람을 이끄시기 위해 교육하십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그런데 그 방식에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만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하는 이는 다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어제 강론에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을 살리기 위한 동아줄이라고 하였습니다.
살리기 위해 내려준 동아줄을 잡을 수 있도록 생명을 살는 사람만 그 줄로 이끌어주십니다.
생명을 죽이는 삼구의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썩은 동아줄을 잡습니다.
끝까지 올라가지 못합니다.
천국에서는 모두 살리는 사람, 모기가 아닌 예수님만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다 모기입니다.
죽이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 어머니의 피를 먹고 삽니다.
태어나서는 어머니의 젖, 자라면서는 부모의 땀과 고생을 먹고 삽니다.
그 걱정이 사라질 때쯤, 자신도 자녀를 낳아 키울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이 죽이는 사람이 될까요?
이것은 어떻게 결정이 될까요? A.I. 로봇을 연구하는데, 어떤 사람은 장애자를 위한 기계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살상용 무기를 만들까요?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라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중요합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시작된 곳이고 자녀가 돌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오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하심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게 아버지께 돌아가는 방식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세상의 아버지만을 아버지로 여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세상의 인간적인 아버지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칩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니다.
곧 피조물인 인간으로부터 오는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먹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어렸을 때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자녀를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자녀는 이제 이 지상의 아버지가 아닌 천상의 아버지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의 아버지의 가르침에 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부모라고 믿는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7살까지만 키워주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그러면 나는 누구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집에 우주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앉아서 그것을 한 번에 다 봤던 것 같습니다.
자라면서 계속 나는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하늘 아버지의 가르침이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가장 큰 가르침은 ‘하.사.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예수님께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을 마치 자신이 창조자인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는 자녀들을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막는 일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이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고 그 창조하신 분이 따로 계실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창조자는 항상 살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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