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5,9-11
자녀가 착해지거나 악해지게 만드는 것은 엄마의 '지금' 감정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화에 이어 기쁨도 주고 가신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쁘고 평화롭게 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당신 평화와 당신 기쁨을 주고 가시는 것입니다. 우선 왜 자녀인 우리들이 기쁘고 평화로워야 하는지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불안과 우울은 나뿐인 사람, 나쁜 놈, 곧 모기로 만들어 부모가 사는 세상에서 살 자격을 잃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불안하고 산란하고 두려운 상태는 우리를 극도로 이기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타인의 필요를 돌아보기보다는 오직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데만 급급해집니다.
마치 여름밤, 단잠을 깨우며 제 배만 채우려는 모기처럼, 타인의 고통이나 희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추구하는 모습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탐욕은 선하다’고 외치던 고든 게코의 공허한 외침이나, 영화 ‘조커’에서 사회로부터 외면당한 한 인간이 내면의 평화를 잃고 극단적인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 또는 역사 속 수많은 폭군들이 자신의 불안과 결핍을 타인에 대한 잔혹함으로 드러냈던 예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들은 물질과 권력을 탐했지만, 영혼은 더욱 피폐해져 갔습니다.
바이킹의 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감정이 왜 꼭 자녀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느냐?’인 것이고 왜 ‘기쁘거나 평화롭게 해 주지 않고 당신의 그러한 감정을 먼저 가지고 전해주어야만 하는가?’입니다.
영화 ‘마더’는 지적 장애가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아들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과 불안에 휩싸입니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동분서주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항상 어둡고 초조합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불안과 초조함도 점점 커집니다.
도준이 그렇게 된 이유는, 다섯 살 때 힘들어서 박카스에 농약을 타서 도준을 죽이고 자신도 죽이려고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도준의 내면에는 '언제든지 엄마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깊은 상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도준이 어머니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게 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행동이 어머니의 기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불안정성은 도준이 사회적 상황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고,
결국 사건에 연루되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경찰서 면회실에서의 장면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면회를 가는데, 유리벽 너머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두렵고 초조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아들 역시 점점 불안해지며,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과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어머니의 초조함과 불안이 그대로 아들에게 전이되는 장면입니다.
자녀는 왜 어머니의 감정을 그대로 물려받아야만 할까요? 단순합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은 누군가의 보호와 도움 없이는 생존과 존재가 사라지는 운명을 가졌습니다.
엄마의 감정은 어디서 생길까요? 바로 자신을 보호해 줄 남편과의 관계에서 생깁니다.
도준의 어머니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남편과의 관계가 안 좋으면 그 감정이 그대로 자녀에게 전이되고 자녀는 그 감정에 의해 착한 사람도 되고 나쁜 사람되 됩니다.
그래서 자녀는 엄마의 감정에 민감합니다.
엄마의 감정이 평화롭지 않으면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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