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요한 20,19-23
성령께서 항상 우리 인생 여정에 동행하십니다!
큰 수술을 받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보호자의 동의와 서명입니다.
수술대에 오르는 환자 입장에서 보호자가 옆에 있다는 것, 얼마나 마음 든든한 일이겠습니까?
사고뭉치 아이들과 동고동락할 때의 일들이 기억납니다.
제 마음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잘 보호해줘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올랐습니다.
아이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고,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고, 끝까지 동행해줘야겠다는 책임감도 확고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파출소나 경찰서를 참 많이 들락거렸습니다.
죄송하다고, 앞으로는 잘 보살피겠노라고, 이번 한 번만 선처해주시라고 애걸복걸하며 탄원서도 참 많이 썼습니다.
따지고 보니 보호자란 말이 참 좋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혹시 지금 누구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구를 보호해주고 있습니까? 인간 세상에서의 보호자, 노력한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가 나를 영원히 보호해줄 것 같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큰 행운아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고 흔들리는 보호자로 인한 근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우리에게는 세례를 통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고 완벽한 보호자를 얻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물론 또 다른 세상에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보호자 성령께서 늘 우리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 살아가는 우리, 늘 흔들리고 방황하는 우리에게 어느 길이 참된 길, 생명의 길, 영원한 길, 구원의 길인지를 명확히 알려주시는 영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힘차게 활동하실 때 기적 같은 변화를 직접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옥 같은 현실이 살아볼 만한 현실로 변화될 것입니다.
미움 덩어리였던 이웃이 사랑 덩어리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의 선물인 성령의 도움은 아무런 노력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목숨 걸고 열심히 기도해야 주어집니다.
충만한 영성 생활의 가장 큰 독소들인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분노, 질투심, 완고함, 물질만능주의를 극복해야 가능합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내면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디서도 얻지 못할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 바람이 일어도 바람에 넘어가지 않는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은 이 세상이 끝난 뒤에 시작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천국은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의 결과인 잔잔한 평화와 은은한 기쁨, 진정한 화해와 용서, 일치와 나눔이 이루어지는 내 안에서 시작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잔뜩 사로잡힌 나머지 문까지 닫아걸고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보여 주신 일련의 행동들이 참으로 은혜롭습니다.
제가 스승이었다면 가장 필요한 순간 줄행랑을 놓은 제자들을 보자마자 치밀어오르는 배신감에,
너희들이 대체 불벼락을 내렸을 것입니다.
“너희들이 인간의 탈을 쓰고 그게 할 짓이냐? 그러고도 어떻게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조목조목 잘못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늘 그러하셨듯이 먼저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유다인들의 관습에 따른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이어서 아직도 굵은 못 자국이 선명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아직도 당신 부활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긴가민가하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부활이 참된 것임을 확증시켜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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