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6,7-15
골방의 문, 주님의 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기도는 골방에서 남이 보지 않는 가운데서 하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이 말씀을 이어보면 주님의 기도가 마치 골방이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이 지상에서 하늘로 올려줍니다. 이 지상은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이 우리 힘을
빨아먹는 곳입니다.
이 욕구가 사라져야 하느님의 음성으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욕구가 사라지려면 세속-육신-마귀가 쓸모없어지는 환경에 나를 가둬야 합니다.
그곳이 골방입니다.
예수님으로 말하자면 광야이고 저로 말하면 성체조배입니다.
세속-육신-마귀를 더는 추구할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생각이 멈춥니다.
생각의 모든 주제는 이 삼구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에도 오만 가지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그 욕구를 추구할 수 있는 환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강론에서 김창옥 강사가 프랑스의 한 시골 수도원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 힘을 되찾았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그 힘을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영화 ‘해리 포터’에서 주인공 해리 포터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방어 마법 중 하나는
‘패트로누스 마법’입니다.
이 마법을 사용하려면 “익스펙토 패트로눔!”이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법을 발동시키는 '내면의 예식'입니다.
해리가 두려움으로 그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는 디멘터의 공격을 받아 절망에 빠질 때마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없게 되면 그는 패트로누스를 불러내지 못하고 힘을 잃습니다.
힘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절망을 이겨내고 가장 강력하고 행복했던 순간으로
자신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이는 특정한 감정적, 정신적 상태를 재현하는 것이 힘을 되찾는 결정적인 예식이 되는 훌륭한 예입니다.
저에게는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의 행복한 기억으로 돌아가게 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할 때마다 그때의 감정으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아버지가 되시고 그 아버지께 저는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그때의 힘을 되돌려 달라며 양식을 청하고 그 양식이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데 사용되도록 청합니다.
무엇보다 유혹을 이기고 악에서 구해주십사 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만 가지 모르는 말로 기도하기보다는 이성으로 하는 다섯 마디로 하겠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주님의 기도를 통해 그때의 행복한 기억으로 되돌아가려 합니다.
이 과정은 꽤 오래 걸립니다.
이는 마치 갈멜산에서 엘리야가 성령의 불을 받기 위해 많은 작업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바알의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 그는 단순히 “하느님, 불을 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다시 쌓고, 이스라엘 지파의 수에 맞춰 돌 열두 개를 가져오고, 제단 둘레에 도랑을 파고, 장작 위에 제물을 올린 뒤 물을 세 번이나 붓게 하는 등 매우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예식'을 거행합니다.
"엘리야는 백성에게서 받은 돌 열두 개로 주님의 이름에 따라 제단을 쌓았다." (1열왕 18,32)
이 모든 과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잊고 있던 하느님과의 계약을 상기시키고, 그분의 권능이 드러날 수 있는 '무대'를 정성껏 마련하는 행위였습니다.
이 예식을 통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웠고,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만이 참하느님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는 신앙의 회복을 위해 구체적인 예식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청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나를 하느님을 만났던 골방으로 이끌고, 사실 주님의 기도가 골방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식 없이 바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일곱 가지의 청원이 나의 청원이 되도록 작업하는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고 좀 끊고 오래 머물러
계십시오.
정말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라 느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면 다음으로 넘어가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기도를 통해 다시 관상의 단계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만 번 빨리 한 주님의 기도보다 다섯 번 느리게 마음을 주며 한 주님의 기도가 저도 더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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