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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2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6-21 조회수 : 66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팰컨 스콧 경이 남극 정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두 팀은 너무나 상관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스콧은 탐험에 나섰던 72명 전원이 사망했지만, 아문센의 탐험대는 대원 1명이 썩은 치아 하나를 뽑은 것 말고는 큰 부상 없이 남극을 정복하고 전원이 무사히 귀환한 것입니다.

 

조건은 영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스콧 탐험대가 월등하게 좋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지원이 한참 부족했던 아문센의 이름이 역사 안에 남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문센은 에스키모의 여행법과 남극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탐험 장비와 루트를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스콧은 전혀 답사를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낙관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막연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것을 막연하게 잘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전혀 어떤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뜻만을 따르려고 합니다. 세상의 재물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섬기다’라는 단어는 노예처럼 복종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과 재물 중, 무엇을 주인으로 여겨서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를 주인으로 여겨야 할까요? 세상의 물질적인 가치입니까? 아니면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결정짓는 주님이십니까?

 

세상의 물질적인 가치를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많습니다. 이 세상 안에서 물질적인 가치의 위세가 대단하기에, 이 가치를 따르지 못하면 제대로 살지 못할 것만 같은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의 결과만을 바라보면서, 순간의 만족과 풍요로움을 주는 물질적인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당연히 하느님께 대한 우선순위는 늘 뒤로 밀립니다.

 

주님께서는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께 철저하게 의탁하는 삶, 그래서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먼저 찾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 사이에서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주님을 굳게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삶에서 가장 순수했던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라(네이션 사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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